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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SAVAGE 사례로 배우는 지식

[토탈 풋볼, 토탈 사커] 현대 축구의 진정한 시발점!! 토탈 풋볼 뜻, 토탈 사커 뜻

by 시구몽 2024.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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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AGE_사. 배. 지_사례로 배우는 지식

 

안녕하세요. 시구입니다.

 

오늘은 축구 전술 중 하나인 토탈 풋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리누스 미헬스와 요한 크루이프


[토탈 풋볼(Total football)] 전원공격 + 전원수비

개요

네덜란드의 명감독 리누스 미헬스가 1970년대 아약스, FC 바르셀로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면서 창시한 축구 전술로, 이것을 전설적인 선수 요한 크루이프를 위시한 네덜란드 선수들이 필드 위에서 완벽하게 구현하면서 세계 축구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현재 토탈 풋볼은 현대 축구의 시발점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21세기 이후 전 세계의 모든 축구는 토탈 풋볼을 베이스로 전술을 고안해, 궁극적으로 토탈 풋볼이 추구하는 축구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I. 토탈 풋볼, 토탈 사커 뜻

네덜란드어: totaalvoetbal/ 영어: Total football

보통 수비 상황에서는 잉여전력으로 간주되기 쉬운 공격수들에게 전방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하도록 만들고, 또 공격 시에는 포지션 체인지를 통해 수비수들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시켜 토탈 풋볼이라는 말 그대로 전원공격 + 전원수비의 형태를 취하는 축구 전술.

토탈 풋볼의 대표적인 구현 형태인 4-3-3 포메이션

리누스 미헬스는 자신의 스승이 고안해 낸 이론에 그 당시 브라질의 지역방어와 헝가리의 포지션 체인지 등을 도입시키면서, 볼을 빼앗긴 후에도 압박을 통해 팀 전체가 최대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최후방 라인을 높은 지점에 형성한 뒤, 최전방 공격수부터 상대를 적극적으로 압박하면 그만큼 상대 골문과 가까운 위치에서부터 공격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서 이 전술을 창안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토탈 축구(Total soccer)로 더 널리 불립니다.


II. 토탈 풋볼의 시작

토탈 풋볼 시대 이전의 축구는 수비와 공격이 분담되다시피 나뉘어 있었고, 서로 간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요. 즉, 서있는 선수들이 공을 뺑뺑이 돌리는 형태였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경기장 중앙에 넓은 벌판을 제공하게 되었고, 이렇게 공간이 나면 볼 컨트롤과 스피드가 뛰어난 선수 한둘이 죽어라 달리면 가속이 붙어 쉽게 파훼되었습니다.

하나를 재끼면 셋이 달려든다.
오렌지 부대, 공으로 돌격!

반면, 토탈 풋볼은 팀 전원의 정교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통해 상대방이 뛰어다닐 공간을 막고, 패싱을 통해 볼 점유율을 올려 공을 골대까지 배달한다는 전술적 사상 하에, 유기적이고 치밀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전 유럽을 제패하였습니다. 이 전술을 다른 팀들도 모방하면서 현대 축구는 그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격변을 겪게 됩니다. 그 결과, 축구는 특급 스타 한두 명이 이끌어 나가는 독주쇼가 아니라, 진정한 팀 스포츠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요한 크루이프

토탈 풋볼은 당시 AFC 아약스를 이끌던 리누스 미헬스 감독과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을 이끌던 에른스트 하펠 감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만들어진 전술입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요한 크루이프는 토탈 풋볼을 가장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찬사를 받은 당대 축구계의 슈퍼스타였는데요. 미헬스가 토탈 풋볼의 설계자라면, 크루이프는 야전사령관이었던 셈입니다.

 

 


참고로 토탈 풋볼이 네덜란드만의 고유한 흐름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미헬스 감독의 아약스 시절 이전에도 토탈 풋볼의 흐름은 있었기 때문인데요. 물론 그 이전 토탈 풋볼의 시작도 잉글랜드 출신 잭 레이놀즈 감독의 아약스였습니다만, 그가 이끌던 당시 아약스는 1910년대 중반부터 40년대 중반까지 30여 년간 토탈 풋볼로 네덜란드에서 맹위를 떨쳤습니다.

 

그 외에 1940년대 아르헨티나에서는 라 마키나라 불린 선수들이 기계와 같이 유려한 움직임을 펼쳤고, 1950년대 헝가리의 매직 마자르는 경기 중에 유기적인 포지션 변경으로 황금색 바람을 일으켰으며,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마슬로프는 압박과 4-4-2 포메이션을 이용해 토탈 풋볼로 이어지는 여러 개념들을 앞서 선보였습니다. 또한 독일의 공격적인 수비수 프란츠 베켄바워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도 카테나치오를 개량해 스위퍼리베로 개념으로 운용하기 시작했고, 1970년 브라질 대표팀은 오늘날도 역대 최강팀 칭호를 듣는 유기적인 미드필더진을 구축했습니다. 이외에 멕시코 축구에서도 토탈 혁명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이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축구의 형태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 라 마키나: 1940년대에 코파 아메리카를 씹어 먹은 아르헨티나 레전드 공격수들.

** 카테나치오: 빗장 수비로 알려진 수비 중심의 축구 전술.

*** 스위퍼: 축구에서 골키퍼를 제외한 수비수 중 가장 뒤에 위치한 수비수.

**** 리베로: 스위퍼와 거의 동일하나, 보다 자유로운 수비수.

 

그렇다고 해서 토탈 풋볼을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리누스 미헬스나 요한 크루이프의 위대함이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닌데요. 오늘날 토탈 풋볼하면 미헬스와 크루이프가 떠오르는 건, 그들이 토탈 풋볼 개념을 제시한 것은 물론 그것을 활용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성과를 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의 영향력 아래 이후의 축구판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들을 토탈 풋볼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현대 축구는 토탈 풋볼로부터 태동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III. 토탈 풋볼의 문제점

경기가 잘 풀리지 않거나 스트라이커가 부진하는 경우, 공은 공대로 돌리다가 정작 골은 넣지도 못하고, 역습 한 번에 무너지는 일이 빈번합니다. 토탈 풋볼은 이기는 축구를 하려는 축구팀 입장에서는 당연히 한 번쯤은 익히고 들어가는 전술이지만, 이에 대한 카운터 전술로 지키는 축구가 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생각만큼 다득점 양상이 나타나진 않습니다.

* 이 때문에 이러한 경기를 두고 애무축구라며 비꼬기도 한다.

 

공격 시에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패스를 계속 돌리고, 전방에 공간이 나면 그때서야 공격을 들어가는 스타일이라 뜬금포나 예상치 못한 멋진 골이 터지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오로지 실리만을 따져 토탈 풋볼에 대항하기 위해 극도로 수비적인 형태인 안티 풋볼이라는 새로운 흐름까지 생기며, 이 두 전술이 맞붙었을 때에는 관객들에게 엄청난 지루함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선수 입장에서도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는 단순하지만, 소화하기는 어려운 형태의 전술이기 때문에, 전방압박을 위해 그라운드 플레이어들의 높은 체력을 요구합니다. 또한 단순히 왔다 갔다 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밀한 볼 움직임과 공간 압박이 필수적인 전술이기에 선수 개개인의 최소한의 전술적 이해도가 받쳐줘야 하는데요. 여기에 더해 요한 크루이프, 펩 과르디올라처럼 천부적인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그라운드 위에서 선수들을 지휘할 키 플레이어가 없으면 금세 진형이 무너지고, 모든 선수들이 공만 보며 따라다니는 동네축구로 전락해 버리는 문제점이 존재합니다.

*  다만, 크루이프는 토탈 풋볼은 체력이 아니라, 테크닉과 공간이며, 체력을 아끼는 전술이라고 주장. 적은 움직임으로도 극대의 효율을 내는 그였기 때문에.

 

 


IV. 히딩크호의 한국식 토탈 사커

헝가레를 받는 히딩크 감독

2001년 1월 1일에 출범한 히딩크호는 전무후무할 지원을 등에 업고,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팀을 새로 만들다시피 했습니다. 히딩크호는 선수들을 성장시키고 가능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바쁜 일정들을 소화했으며, 선수들의 훈련 프로그램을 지시하는 한편,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의 포지션을 변경하는 실험을 자주 했습니다.

 

가령, 송종국은 오른쪽 윙백/ 미드필더는 물론, 센터백을 겸할 수 있었으며, 2002 골드컵 때에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기용했습니다. 이영표는 2002년 3월 이전까지는 꾸준하게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다, 김남일이 해당 위치에 자리 잡은 이후에야 본래 포지션인 왼쪽 미드필더로 돌아갔으며, 박지성 역시 월드컵 직전에야 윙어로 자리 잡았을 뿐, 그전까지 히딩크호 내에서 주로 중앙 미드필더를 소화했었습니다.

 

히딩크호의 장점으로 꼽히는 멀티플레이어들이 대거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재능 있는 선수들을 다양한 포지션에 넣어 실험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윙어로 뽑아놓은 선수 중에 설기현은 그 활약이 엄청났는데, 16강까지만 갈 수 있었던 히딩크호에게 그는 8강으로 가는 관문을 뚫는 선물을 줬는데요. 히딩크호 신의 한 수 중 하나가 바로 설기현 그 자체였습니다.

 

 


그 결과, 히딩크호의 멤버들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정예 멤버로 완성되었으며, 히딩크의 지도 하에 의해 완성된 한국식 토탈 사커를 제대로 수행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골키퍼 이운재, 공격수 황선홍, 수비수 홍명보, 미드필더에 유상철 등 한국 축구사상 최고의 핵심 멤버들이 포진했으며, 각자의 개성은 다양했으나, 균형이 잘 잡힌 상태였습니다.

* 특히, 홍명보와 황선홍, 일명 H-H 라인은 10년에 한 번 나올 정도라는 평가를 받는 핵심 수비수와 공격수였음. 실제로 그들이 은퇴한 지 20년이 가까이 지난 후에야 손흥민-김민재 라인 정도가 비교 대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걸 보면 경이로운 부분.


글을 마치며

만들어진지 100년 가까이 되는 축구 전술이 아직까지도 거의 모든 전술의 토탈 풋볼을 기반으로 사용된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데요. 그만큼 효율이 좋은 전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언급하였듯이 모든 선수의 이해가 필요한 전술임과 동시에, 유기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아주 전문적인 전술이기도 하죠.

 

지금으로서는 어려워 보이지만, 미래에 토탈 풋볼을 넘어서는 어떤 혁신적인 전술이 나올지도 참으로 기대가 됩니다. 토탈 풋볼보다 역사가 더 긴 전략과 전술들도 얼마든지 파훼되고 구시대의 것이 되어버리기도 하니까요.

 

이제 포스팅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토탈 풋볼에 대한 내용들이 조금이나마 유익하셨길 바랍니다. 소중한 시간 내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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