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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SAVAGE 사례로 배우는 지식

비극적인 삶과 영원한 명성: 모딜리아니의 이야기

by 시구몽 2024.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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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AGE_사. 배. 지_사례로 배우는 지식

 

안녕하세요. 시구몽입니다. 오늘은 우수에 젖은 표정과 긴 목의 초상으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 모딜리아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이름
아메데오 클레멘테 모딜리아니
Amedeo Clemente Modigliani
출생
1884년 7월 12일
이탈리아 왕국 리보르노
사망
1920년 1월 24일 (향년 35세)
프랑스 파리
직업
화가
가족
파트너 잔 에뷔테른 (1917년~1920년)
딸 잔 모딜리아니

[제목]

※ 인물들의 이름이 생소할 수 있어, 처음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에는 작은따옴표(' ') 처리를 하였습니다.


I. 개요

'모딜리아니'는 20세기 초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화가입니다.

당시 예술계에서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다가 갔고, 사후에 인정받은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고흐'와도 같이 자주 언급되며, 그가 죽고 나서 자살한 아내 '잔'도 비극적인 연인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II. 모딜리아니 일생

  • 1884년 7월 21일,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항구도시 리보르노에서 유대인 상인의 막내아들로 태어남. 아버지는 광산 사업가로 큰 번영을 누려, 어릴 적에 모딜리아니의 삶은 꽤 부유했음.
  • 10대 초반에 아버지 사업이 쫄딱 망해서 아버지가 그만 뇌졸중으로 쓰러져 죽으면서 가난이 찾아옴.
  • 13세에 장티푸스로 죽을 고비를 겨우 넘김. 모딜리아니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잔병에 시달려야 했음.
  • 14세에 리보르노 미술학교에 입학해, 풍경화가 '미켈리'에게 데생과 회화를 배움.
  • 17세에 폐결핵에 걸려, 요양을 위해 어머니와 카프리·나폴리·로마·피렌체 등 관광지를 여행하던 중, '티노 디 카마이노'의 조각을 보고 큰 감명을 받게 됨.
  • 18세가 되던 해, 피렌체 미술학교에 들어가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나, 그곳에서 1년만 배움.
  • 19세에 베네치아 미술학교에 입학해, 현대미술에 대한 흐름을 접함.
  • 1906년, 22세 되던 해에 파리로 떠났고, 콜라로시 미술학교에서 그림을 배움. 이때, 폴란드 출신 유대인이자 미국 국적을 가진 조각가 '야곱 엡스타인(1880~1959)'과 친구가 되었는데, 당시 이름 없던 조각가이던 엡스타인과 친하게 지냄. 참고로, 엡스타인은 모딜리아니가 죽은 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며 영국에서 경 작위를 받았고, 가난한 젊은 시절의 모딜리아니에 대해 회고하기도 함.



  • 23세 되던 해에 후원자인 '폴 알렉산드르' 박사의 권유로 앙데팡당 회원으로 가입했고, '모리스 위트릴로'와 친교를 맺음.
  • 24세 되던 나이에 앙데팡당전에 유화 여섯 점을 출품했고 한동안 조각에 전념.
  • 29세 되던 해에 프랑스에 온 러시아 화가 '카임 수틴(1893~1943)'과 친구가 됨.
  • 30세에 몽파르나스로 거처를 옮겨 영국 시인 '베아트릭스 헤이스팅스'(1879~1943)와 사귀었고, 1916년까지 동거.
  • 33세 되던 해, 그의 전속화상이던 친구 '즈보르프스키'의 집에서 머물며 작품활동. 이때, 19세의 미술학도인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 1898. 4. 6.~1920. 1. 26.)'을 만남. 1917년 3월, 모딜리아니와 잔은 지중해 연안의 코트다쥐르에서 동거를 시작. 베르트 바이유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는데, 출품한 누드화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경찰이 압수했고, 전시기간도 단축됨. 그림은 싸구려로 팔리는 신세가 되었고, 가난에 허덕이며 온갖 질병에 시달리던 모딜리아니는 술과 마약으로 버티는 신세가 되었고, 당연히 건강은 더더욱 악화.
  • 1918년, 건강이 약화되어 니스로 갔고, 11월 29일에는 그곳에서 딸 '잔 모딜리아니(1918~1984)'이 태어났고, '폴 기욤'이 주최한 젊은 작가전에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와 함께 작품을 전시.
  • 1919년, 파리로 돌아왔고, 잔이 두 번째 아이를 임신. 7월 7일, 잔과 공식적으로 결혼했지만, 생활고로 인해 잔은 친정으로 가게 됨. 잔의 부모는 두 사람이 만나지 못하도록 단단히 통제.
  • 1920년 1월 22일, 결핵성 수막염 및 알코올 및 마약 중독으로 인해, 파리 자선병원에 입원. 1월 24일, 35세에 사망해 페르 라세즈 묘지에 안장.



모딜리아니에게는 잔과 만나기 전에 사귄 여성들로부터 적어도 최소 3명의 사생아들이 있었다고 판단되며, 그중 확실하게 그의 자식으로 추정되는 건 잔과 처음 만난 연도인 1917년에 그가 만나던 여자들 중 하나인 '시몬 티로'에게서 태어난 '제라르 티로'라고 하는 아들입니다. 이 아이는 2004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III. 모딜리아니 사후

살아생전, 음식값으로 식당에 그림을 대신 줬다가, 욕설과 함께 그림이 거리에 내던지는 굴욕을 당했던 모딜리아니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고, 아내도 비극적으로 죽은 뒤 15년도 안돼, 엄청난 재평가로 그림값이 1,000배가 넘게 올랐기에, 지인들이나 친척들은 무척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내 잔의 부모는 "남편 따라 자살하지 말고 그대로 둘째 아이 낳고 살았더라면..."라고 두고두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모딜리아니가 잔과의 사이에서 낳은 외동딸인 '잔'은 아메데오의 누나인 '마르가리타'가 양육했습니다. 화가가 되어 고생만 하다 죽은 남동생의 인생이 싫었던 마르가리타는 조카딸에게 부모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유대인이라서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에게 시달림을 받던 잔은 프랑스로 피신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부모에 대해 알게 된 잔은 미술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서, 아버지 모딜리아니에 대한 자료를 모아, 평전 「모딜리아니:인간과 신화」를 펴냈습니다.

미국 소더비 경매에서 앙리 마티스와 '모네'의 작품을 제치고, 1916년작 「소파에 앉아있는 누드」라는 작품이 6900만 달러로 최고가로 팔렸고, 2018년 경매에서도 1917년작 「누워있는 나부」라는 작품도 1억 5천720만 달러로 역대 최고가로 팔리면서 가치를 증명하였습니다.

「소파에 앉아있는 누드 」, 1916
「누워있는 나부」, 1917


IV. 모딜리아니 작품 세계·화풍

모딜리아니는 '폴 세잔'과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항상 인물만을 그렸는데, 파리의 뒷거리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및 여성의 나체 등을 즐겨 그렸습니다. 그의 인물화는 가늘고 긴 목이나 달걀 모양의 얼굴을 가는 선으로 둘러, 독특한 기품과 아름다움을 나타냈습니다.



그의 화풍은 1914년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초기의 작품은 다소 조화롭고 고전적인 느낌을 가진다면, 후기의 작품들은 인물의 표현이 다소 비정상적이며 형태도 단순화되었습니다. 그 이유로는 그가 회화를 잠깐 접고 조각을 했을 때, 고대 에투르스크 조각과 아프리카 원시조각의 형태를 접했고, 거기에 흥미를 느껴 인물을 세밀하게 그리기보단, 내면적인 특징을 그리는데 힘썼기 때문입니다.

모딜리아니는 총 314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주요 작품으로는 1909년작 「첼로 연주자」, 1911년작 「여인의 두상」, 1916년작 「섕 수틴의 초상」, 1917년작 「붉은 누드」, 1918년작 「잔 에뷔테른의 초상」등이 있습니다.

「첼로 연주자」, 1909
「여인의 두상」, 1911
「섕 수틴의 초상」, 1916
「붉은 누드」, 1917
「잔 에뷔테른의 초상」, 1918


V. 모디와 잔

잔 에뷔테른과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잔은 수업이 끝나면 카페 로통드에 자주 들르곤 했는데, 어느 날 깔끔한 코듀로이와 붉은 스카프를 두른 이탈리아 화가 모디(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저주받은 화가라는 뜻)를 우연히 마주하게 됩니다. 모디는 잘 생긴 외모에 교양과 매너가 있어서, 당시 파리의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으나, 너무 가난해서 빵을 사기 위해 헐값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술과 마약, 방탕한 생활에 의지해 현실에서 도피하는 예술가였습니다.

1917년부터 2년 동안, 잔은 수업이 끝나면 작업실에서 그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키워갑니다. 어릴 때부터 폐결핵을 앓던 모디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자, 둘은 니스의 해변으로 요양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둘은 부부로서 살았지만, 잔 집안의 극심한 반대로 합법적인 예식을 치르지 못합니다. 14살 연상에 알코올중독에 마약복용, 결핵으로 몸까지 성하지 않은 가난한 무명화가에게 딸을 보내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겠죠. 




하지만 잔과 함께하는 동안 모디는 술도 줄였고, 마약도 끊게 되었습니다. 둘은 가난하지만 기쁨이 충만한 날들을 보내며 모디는 그 어느 때보다 뛰어난 작품들을 열정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시기에 모디의 대표적인 초상화들이 가장 많이 탄생했고, 모디와 잔의 딸 잔 모딜리아니가 태어난 것도 니스에서였으며, 목이 긴 여인으로 유명한 잔의 초상화들을 제작한 곳도 니스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2년이 채 못되어 다시 파리로 돌아와야 했고, 병원에 실려간 모디는 입원 3일 후 사망합니다. 사인은 결핵성 뇌막염이었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잔은 모디의 주검에 달라붙어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답니다. 

 

잔은 장례식에서 그야말로 울다 미칠 정도로 슬퍼했습니다. 잔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는 그녀가 죽기 얼마 전에 다 그린 유작 「자살」에 나오는 그림 속 칼로 자살하는 여인이 그녀 자신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자살할까 봐 오빠인 '앙드레'가 곁에서 지켜봤지만, 앙드레가 잠을 자던 1월 26일 새벽, 잠을 깬 잔은 뱃속에 든 둘째 아이와 함께 4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만 21세 나이로 남편의 뒤를 따라갑니다.

「자살」, 1920


VI. 모딜리아니 관련 사례

  • 전기 영화 「몽파르나스의 연인」(1958), 막스 오퓔스가 준비하다가 타계했고, 자크 베케르가 이어받아 완성.
  • 전기 영화 「모딜리아니」(2004), 배우 앤디 가르시아가 모딜리아니 역.
  • 영화 「007 스카이폴」(2012), 범죄집단이 그림을 불법거래하는 장면에서 모딜리아니의 「부채를 든 여인」이 등장.
  • 영화 「그것」(2017), 스탠리가 무서워하는 그림이 모딜리아니의 화풍으로 그려진 「피리 부는 여인」.
  • 예능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2011년 7월 3일)
  • 뮤지컬 「모딜리아니」

영화 「007 스카이폴」의 한 장면


글을 마치며

죽고 나서야 재평가를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죽고 나서도 초라한 화가로 남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드네요. 자신을 따라 죽을 만큼 절절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참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께 조금이나마 유익한 시간이 되셨길 바라며, 남은 하루도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소중한 시간 내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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