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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SAVAGE 사례로 배우는 지식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 한국 독립군과 미국 CIA의 함께 계획한 작전?! 독수리 작전 뜻

by 시구몽 2024.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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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AGE_사. 배. 지_사례로 배우는 지식

 

안녕하세요. 시구입니다.

 

오늘은 '독수리 작전'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은 19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작전명 독수리, 일명 '독수리 작전'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

개요

도노반 당시 OSS 수장

시작은 OSS(현 CIA)의 수장인 윌리엄 도노반에서부터 출발합니다. 1944년이 되면 OSS는 자신들이 전쟁에 기여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 스스로 몰리게 됩니다. 이미 유럽 전선은 종결돼 가는 상황이었고, 태평양 전선 쪽도 바다 쪽은 맥아더와 니미츠가 반씩 쪼개 진격하는 상황이었기에, OSS가 비벼볼 곳은 중국뿐이었습니다.

1944년 가을까지만 하더라도 OSS 중국 지부 요원은 106명에 불과했는데, 1945년 7월이 되면 1,891명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때, OSS 워싱턴 본부에서는 '냅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 냅코 프로젝트: 독수리 작전과 마찬가지로 OSS와 한인과의 연합 작전, 자세한 내용은 본 포스팅 하단 링크 참고.



당시 OSS 중국전구의 총사령관인 리처드 헤프너 대령 중국의 일은 자신들에게 맡겨달라고 강하게 주장하였고, 헤프너를 신임하고 있었던 도노반은 그를 확실히 밀어주겠단 의지가 있었는데요. 전쟁은 얼마 안 남았고, 어쨌든 중국에서 성과가 나와야 했습니다. 결국 1945년 3월 29일, 도노반은 중국전구의 독자 작전을 허락하게 됩니다.

헤프너는 허락을 받자마자 일을 진행하기 시작하였고, 그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중국 서안에 OSS 북동사령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북동사령부에서 추진한 작전들 중 하나가 한반도 침투작전인 독수리 작전입니다.


I. 독수리 작전 뜻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 2차 대전 중, 미국 OSS가 한인을 대일 전에 활용하기 위해 한국광복군(이하 광복군)과 합작으로 정보요원을 양성한 계획.

 

이 작전은 광복군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요. 1944년 10월, 광복군 제2 대장인 이범석이 OSS에게 제안을 한다. 그것은 공동의 적이 일본임을 상기시키며, 눈에 띄는 미군에 비해 여러 조건에서 유리한 광복군을 훈련시켜 조선에 침투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1945년 1월, OSS의 클라이드 싸전트 대위가 광복군 2 지대 주둔지를 방문하고, 광복군의 가능성을 엿보게 되고 상부에 긍정적인 보고를 하게 됩니다. 클라이드 대위는 훗날 광복군 훈련과 지휘를 담당하게 됩니다.



광복군이 이렇게 움직이자 임시정부도 움직이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OSS와 주중 미군 사령부가 임시정부 관계자들과 만나게 되는데요. 이제 이야기는 급속도로 진행됩니다.


II. 독수리 작전 초기 계획과 시작

애초 계획은 광복군 60명을 선발해 3개월 간 정보수집, 통신훈련 등을 시켜서 45명을 추려내고, 이들을 1945년 여름에 한국의 5개 전략지점. 그러니까 서울, 부산, 평양, 신의주, 청진에 침투시킬 계획이었습니다. 이들은 해당 지역에서 일본의 군사시설 및 산업시설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혹시 모를 미군의 한반도 상륙 시에는 후방에서 한국인들의 봉기를 유도하고 미군의 상륙을 측면지원하는 임무까지 맡게 될 예정이었다.


계획이 성공적으로 실행된다면, 150일 안에 일본에 대한 정보를 캐낼 수 얻게 될 것이란 계산이 나오자 OSS중국전구는 워싱턴에서 진행 중인 냅코 프로젝트에 비할 바 없는 성과를 낼 것이란 꿈에 부풀었습니다.

곧, OSS 중국전구 비밀첩보과 주관하에 미군 교관들(장교와 하사관 7명 동원)과 함께 첩보공작을 위한 훈련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독수리 작전의 1기생으로 광복군 2 지대원 125명 중 50명이 선발되었으며, 이들 중 38명이 최종 수료하게 됩니다.




III. 독수리 작전, 광복군 그리고 임시정부

광복군과 임시정부 역시 꿈에 부풀었습니다. 광복군 2 지대 본부에는 "한미합동지휘본부(Korean-American Joint Command)"가 설치된 것입니다. 잘하면 미국의 승인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예측들이 나오는 상황이었죠. 심지어 OSS국장인 도노반이 중국으로 달려옵니다.

 

1기생 훈련은 7월 말에 끝나고, 1945년 8월 4일에 수료식을 하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 1기 수료생 숫자는 38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두 달 남짓 짧은 기간 동안에 모든 훈련을 마쳤는데요. 원래 광복군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특수작전을 위한 훈련인데 너무 짧습니다. 이건 이들의 임무가 '정보수집'에 한정 됐기 때문입니다.

김구 당시 임시정부 주석

그리고 대망의 1945년 8월 5일, 임시정부 김구 주석을 비롯해 이청천 총사령관, 엄항섭, 이시영 등 10여 명의 임정 시찰단이 서안에 도착했고, 8월 7일에는 도노반과 회담을 가지게 됩니다.




IV. 독수리 작전, 위기에 봉착하다

미국의 정보수장과 만나게 된 김구는 기뻐합니다. 드디어 미국과 임시정부가 손을 잡고 공동의 적인 일본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게 됐다고 흥분했습니다. 그리고 김구는 문제의 편지를 도노반에게 건넵니다.


"귀국의 트루먼 대통령에게 이 편지를 전해주십시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명의의 편지를 미국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받는다면, 임시정부는 그 자체로 '반쯤' 미국의 인정을 받는 셈이 됩니다. 도노반은 이 역사적인 편지를 트루먼에게 전해주게 됩니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합니다.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

김구 주석이 한미간의 공동협력을 강조한 이 편지는 트루먼을 빡치게 만든 것인데요. 그도 그럴 것이 트루먼 입장에서 임시정부 꼬리표가 달린 이들은 그저 화적 떼에서 갓 벗어난 정도의 존재였습니다. 또한 아직 독립을 하지도 않았고, 3년 전의 카이로 회담에서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키겠다'라고 합의했는데, 난데없이 한미간의 공동협력을 논한 것입니다.

즉, 미국정부가 승인하지 않았는데도 정부를 자칭하는 이들의 편지를 전달한 것에 트루먼은 분노한 것인데요. 한편, 이 당시 일본은 항복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광복군의 독수리 작전도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V. 독수리 작전의 결말

독수리 작전의 애초 목적은 달성할 수 없게 됩니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것입니다.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겠다는 발표를 한 것이죠. 하지만 OSS는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전을 결행하기로 합니다.

당시 여의도 비행장

광복군 측의 이범석, 김준엽, 장준하, 노능서 4명이 OSS의 책임자 버드 대령의 지휘 아래 한반도로 출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1945년 8월 18일, 이들은 서울의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합니다. 그리고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를 사건이 터집니다. 당시 여의도 비행장을 지키던 일본군들의 총구에 둘러 쌓인 것입니다.

 

일본군들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자신들이 항복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싸워 온 관성 때문에 이들을 위협한 것입니다. 결국 독수리 작전의 수행원들은 다음 날,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중국으로 복귀한 이범석 장군을 비롯한 수행원들

역사적으로 '독수리 작전'이라 불렸던 작전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납니다.



VI. 독수리 작전 의의

냅코 프로젝트와 독수리 작전 모두 미국의 정치적 이유 때문에 계획됐고, 미국인들의 정치적 이유 때문에 지연됐습니다. 냅코가 좌절된 반면 독수리 작전은 그나마 실행(?)됐다는 것에 위안을 찾아야 할까요?

 

안타까울 답답하지만, 우리가 기억할 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이런 굴욕과 수모를 모두 감내하면서 싸워왔다는 사실입니다. 이용당하는 줄 알면서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요.   

그런 수많은 씨앗을 선조들이 뿌려주었기에 지금 이 포스팅을 읽을 수 있고, 작성할 수 있는 것일 테죠.


글을 마치며

독수리 작전과 함께 추진 중이었던 또 하나의 국내 진공 작전인 냅코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는 아래의 링크를 통해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 유한양행 유일한 회장이 CIA 요원이었다고?! 냅코 프로젝트 뜻, 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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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 포스팅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조금이나마 유익한 정보 얻어가시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소중한 시간 내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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