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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AGE 사례로 배우는 지식

[양당제 2편] 대한민국 민주당계 정당의 역사, 계보, 전신, 기원 & 양당제 뜻, 양당제 사례

by 시구몽 2024.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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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AGE_사. 배. 지_사례로 배우는 지식

 

안녕하세요. 시구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양당제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양당제의 정의를 간단히 되짚어보고, 미국의 양당제 구도와 우리나라의 민주당계 정당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미국의 양당제, 공화당 vs 민주당


[양당제 2편]

I. 양당제 뜻

兩黨制, Two-party system

《다른 정당보다 압도적인 두 당이 중심이 되어 경쟁하는 체제 혹은 상태》

 

1편에서도 서술하였듯, 양당제의 정의는 위와 같습니다. 우리나라 양당제 구도에 대해 추가로 조금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우리나라는 제6공화국(1987년) 이후, 보수정당민주당계 정당이 번갈아가며 정권을 차지해 왔습니다.

* 보수정당: 2024년 기준 국민의힘.

** 민주당계 정당: 2024년 기준 더불어민주당.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양당이 합쳐서 283석(전체 의석의 94.3%)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2022년, 20대 대선에서는 양당 후보의 득표율을 합치면 96.4%에 이르렀습니다.


2024년을 기준으로도 양당 의원 비율이 90% 이상이고, 각종 주요 여론조사 기관의 비양당 지지율이 5% 내외인 것을 고려하였을 때 대한민국의 양당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II. 미국의 양당제 구도

공화당의 상징 코끼리, 민주당의 상징 당나귀

미국은 주요 민주주의 국가 중 양당제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중앙정치든 지방정치든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당은 공화당과 민주당밖에 없는데요. 미국은 대부분의 선거에서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를 채택하기 때문에 소수정당이 불리하고, 대통령 선거의 경우 선거인단 승자독식 제도 때문에 소수정당의 입지가 더 줄어듭니다. 2014년 중간선거 당시, 거대 양당은 전체 표의 96%를 득표했고, 전 의석을 획득했습니다.

 

미국 역시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보수정당인 공화당과 진보정당인 민주당의 대결 구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은 코끼리고, 민주당을 상징하는 동물은 당나귀인데요. 이 동물이 양당을 상징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요?

 

과거 언론에서 민주당의 앤드루 잭슨과 이름이 비슷한 당나귀(Jackass)에 빗대어 비판하였으나, 민주당이 '당나귀는 근면하고 강직한 동물'이라고 역으로 받아치며, 1828년 대선 때부터 당나귀를 민주당의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1874년, 3선 도전을 고려하는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과 공화당을 코끼리로 풍자되었으나, 공화당 역시 '코끼리는 위엄 있고 점잖으며 힘이 강한 동물'이라 강조하며 코끼리를 당을 대표하는 동물로 내세웠답니다.

* Jackass는 멍청이라는 뜻도 있음.

** 정확히는 1870년대, 토마스 내스트라는 만화가가 만평을 통해, 공화당과 민주당을 각각 코끼리와 당나귀로 표현하면서부터, 양당의 상징이 두 동물로 고착되었음.

 

 

생각보다는 썰렁한 유래인 것 같으면서도, 상대 진영의 공격거리를 오히려 자신들의 당의 상징으로 삼아버리는 것이 굉장히 인상 깊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현상일 테니까요.

* 우리나라 양당의 공식 로고는 없으나, 과거 보수정당에서는 황소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적이 있으며, 민주당계 정당은 비둘기와 소나무를 로고에 쓴 적이 있음.


III. 민주당계 정당의 역사, 기원

2024년 현재, 양대 정당 중 민주당계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민주당계 정당의 탄생과 성장 과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민주당(1945 ~ 49)

한국민주당은 원세훈, 김병로 등의 조선민족당과 장덕수, 김도연 등의 한국국민당이 합당하여 만들어진 정당으로, 당시에는 지금 민주당과는 정반대의 우익 성향 정당이었습니다.

 

한국국민당 계열은 친일 반민족행위자 출신이 많았습니다. 당 수석총무와 2대 부통령을 지냈던 김성수가 한국민주당의 대표적 친일파입니다.

 

이후 민주국민당으로 흡수됩니다.


민주국민당(1949 ~ 55)

한국민주당의 위원장인 김성수가 1948년 말부터 대한국민당의 지청천, 신익희 등과 의견의 일치를 봄으로써, 한국민주당에서 '민주'라는 글자를, 대한국민당에서 '국민'이라는 글자를 따서 1949년 2월 10일에 민주국민당을 창당합니다.

 

민주국민당은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을 국가의 상징적인 존재로 만들고,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헌 시도에 위기감을 느낀 이승만은 자유당을 창당했고, 민주국민당은 야당으로서 이승만 정권에게 상당한 탄압을 겪게 됩니다.

 

이후 민주당으로 흡수됩니다.

 

 


민주당(1955 ~ 61)

민주당 로고

이승만 정권이 발췌 개헌에 이어 사사오입 개헌마저 멋대로 통과시키자 위기를 느낀 제1야당 민주국민당과 장면 등 흥사단계, 그리고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하는 자유당 탈당파가 세력을 모아 창당한 정당입니다.

* 발췌 개헌: 정부 측 안과 국회안을 절충해서 통과시켰다고 하여 발췌개헌이라 이름 붙였지만, 사실상 이승만의 재선을 위하여 6.25 전쟁 도중에 치러진 개헌.

** 사사오입 개헌:  발췌 개헌을 통해 재선에 성공한 이승만은 이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원래 2회까지만 가능했던 대통령 연임 제한을 자신에 한해 면제하려고 한 개헌.

3대 대선에서 민주당의 신익희가 내세운 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

이승만의 3·15 부정선거(당시 4대 대선)에 따른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면서, 민주당은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해 제1당이 되고, 내각제로 개헌하여 제2공화국의 집권 여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극심한 내부 계파 갈등에 시달리며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는데요. 이러한 계파 갈등에 따른 정치 혼란은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으며, 또한 제2공화국이 무능해서 박정희가 갈아엎었다는 식의 정당성마저도 제공했습니다.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강제 해산 됩니다.

 

 


신민당(1967 ~ 80)

신민당 당기

신민당은 제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 단일화를 위해 탄생한 정당입니다.

 

6대 대선에는 지난 대선에 이어 윤보선이 출마했지만,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성공으로 인해 4년 전보다 훨씬 큰 격차로 패배합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최초로 현대식 공개경선을 실시한 결과, 김대중이 승리하여 대선 후보로 선출됩니다. 김대중은 3선 개헌까지 저지른 박정희가 이번에도 대통령이 되면 영구집권의 총통제를 실시할 것이라고 유권자들에게 경고했지만, 결국 패하고 맙니다.

 

이후, 김대중의 예언대로 박정희 정부는 10월 유신을 선포했고, 신민당은 제1야당으로서 유신독재에 맞서 다양한 방식의 민주화 투쟁을 주도합니다. 이때부터 신민당을 비롯한 민주당계 정당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 평가가 희석되고 민주화 투사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자리 잡게 됩니다.

아무리 닭의 모가지를 비틀지라도
새벽이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김영삼 당시 국회의원,
1979년 제명 이후 발언

 

이후 장기화된 유신 체제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피로가 누적되며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이 정당 득표율 1위를 기록하는 이변을 연출했고, 그해 10·26 사건으로 유신 정권은 종말을 맞이합니다.

 

박정희 사후, 국회는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민주헌법 개헌안에 합의했지만, 신군부가 정권을 잡으며 민주화의 꿈은 물거품이 됩니다.

 

5·17 내란으로 인해 강제해산 됩니다.

* 5·17 내란: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인사가 정권 장악을 위해 주도한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의해 발생한 사건.

 

 


민주한국당(1981 ~ 88)

민주한국당은 신군부의 정치규제를 피해 간 신민당 출신 인사들이 창당한 정당으로, 전두환 정권의 관제야당 중 하나였습니다. 창당 자금도 국가안전기획부가 대 줬고, 선거 공천도 안기부가 넘겨준 명단대로 했을 정도로 힘이 없었습니다.

* 관제야당: 집권당과의 합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그냥 껍데기만 있는 정당.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전원 낙선으로 자동해산됩니다.


신한민주당(1985 ~ 88)

신한민주당 당기

신한민주당은 1985년 초에 전두환 정권의 정치규제가 풀린 신민당 출신 인사들이 창당한 정당입니다. 사실상 신민당이 부활한 정당으로 당명 역시 선관위가 신민당 재사용을 불허하는 바람에, 약칭을 '신민당'으로 할 수 있는 신한민주당으로 정한 것입니다.

 

이민우 총재가 전두환 정권이 신민당의 요구사항을 들어준다면 내각제 개헌을 수용할 수 있다고 발표하자,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는 김영삼과 김대중이 강하게 반발해 탈당하고, 이후 신민당은 급속하게 몰락합니다.

* 이를 일명 '이민우 구상'이라고 함.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전원 낙선으로 자동해산됩니다.

 

 


통일민주당(1987 ~ 90)

통일민주당 로고

통일민주당은 이민우 구상에 반발해 김영삼계와 김대중계가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창당한 정당입니다. 통일민주당은 6·10 민주 항쟁을 주도했고, 직선제 민주화를 쟁취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나란히 출마를 선언한 김영삼과 김대중이 끝내 단일화에 실패하자 김대중이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며 통일민주당에는 김영삼만이 남게 되는데요.

 

민주당은 단일화 무산의 대가로 대선에서 패한 데 이어,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평민당에 밀려 제2야당으로 전락하면서 위기에 처했으며, 김영삼의 차기 대권주자 행보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이때 똑같이 난관에 봉착했던 노태우 대통령이 3당 합당을 제안했고, 김영삼이 수락하며 통일민주당은 여당인 민주정의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해 민주자유당이 되어 보수정당의 계보로 편입됩니다.


평화민주당(1987 ~ 91)

평화민주당은 제13대 대통령 선거 정국에서 김영삼과의 단일화에 실패한 김대중이 민주당을 탈당하여 창당한 정당입니다. 대선에서는 평민은 평민당, 대중은 김대중이라는 센스 있는 구호를 내세웠으나 결국 3위로 낙선합니다. 당시 김대중은 4자 필승론을 제시하였으나, 결국 노태우가 어부지리로 승리하며 4자 필승론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 4자 필승론: 노태우(대구·경북), 김영삼(부산·경남), 김종필(충청), 김대중(호남)이 모두 출마해 각자 자기 지역을 가져가면 수도권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후보인 김대중이 당선될 수 있다는 이론

 

1991년 4월 15일, 신민주연합당으로 당명을 변경합니다.

 

 


민주당(1990 ~ 91)

민주당은 삼당합당을 반대하는 통일민주당 이기택, 노무현 등 일부 의원들과 박찬종, 이철 등의 무소속 의원 등을 중심으로 창당된 정당입니다. 보통 '제1차 꼬마민주당'으로 불립니다.

* 민주당계 정당 중에서도 당세가 심하게 약하고 의원의 숫자도 적었다는 점 때문에 '꼬마'라는 접두어가 붙어 꼬마민주당으로 불렸음. 이후로도 몇 차례 꼬마민주당이 있었으나 여기선 다루지 않음.

 

정치 신인이었던 노무현이 3당 합당 비판에 앞장서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던 꼬마민주당은 열린우리당 - 친노 - 친문으로 이어지는 계파의 정치적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1년 9월 16일, 신민주연합당과 함께 민주당으로 신설합당되어 소멸합니다.


신민주연합당(1991)

신민주연합당 3당 합당으로 순식간에 홀로 남은 야당이 된 평화민주당이 재야 세력과 규합하여 만들어진 정당입니다. 신한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당명은 약칭으로 '신민당'을 활용할 수 있도록 신민주연합당으로 정하게 됩니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는 각종 이슈로 인해 무난하게 승리할 것으로 보였으나, 야권표가 분산되고, 투표율도 저조하게 나오면서 패배합니다.

 

이후 민주당으로 흡수됩니다.

 

 


1991년에 꼬마민주당과 신민주연합당이 만나서 창당된 민주당은, 1995년에 통합민주당에 흡수됩니다. 이후 1996년에 다시 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며, 1997년에 분열되며 결국 한나라당에 흡수됩니다.

* 요약: 민주당 - 통합민주당 - (민주당) - 한나라당, 괄호는 이전 순서의 정당이 당명을 변경한 것을 의미함.

 

한편, 1995년에 김대중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는 활동 기간 중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성공하며, 2000년에 새천년민주당이 창당됨과 동시에 해산됩니다. 새천년민주당은 역시 대통령으로 노무현을 배출하며, 2005년 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게 되며, 일부는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 요약: 새정치국민회의 - 새천년민주당 - (민주당) & 열린우리당

 

그 후의 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 (민주당) - 중도통합민주당 - (민주당) - 통합민주당
  • 열린우리당 - 대통합민주신당 - 통합민주당

☞ 통합민주당 - (민주당) - 민주통합당 - (민주당) -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

 

 


글을 마치며

2008년 민주당 로고

앞서 민주당계 정당이 소나무를 로고에 쓴 적이 있다고 언급하였는데요. 현재 더불어민주당 역시도 처음엔 '민주소나무당'을 당명으로 유력 검토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민주당계 정당의 계보를 보시면, 갈라지고 합치는 것을 반복합니다. 이는 대부분 내부 갈등 및 의견 통일 실패로 인한 것인데요. 이런 오합지졸들이 유일하게 뭉칠 때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 박근혜의 국정농단 등 전국가적인 위기가 찾아올 때뿐입니다.

 

그 외에는 개개인이 얼마나 잘났고 품고 있는 대의가 가지각색인지, 갈라져서 스스로 무너져 내리기 바쁩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지도자가 이끌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독재보다 부정적으로 보일 정도로 무능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는 현재도 똑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내부에서는 갈라지고, 당의 대표는 지도자 구실을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의 현재까지의 언행으로 보면, 애초에 당 대표와 차기 대선 후보로서 걸맞은 사람인지 확신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차악을 선택해야만 하는 시대인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구태를 답습하여 매번 권력을 남용하는 보수정당과 학습 능력 없이 이권 갈라먹기에 치중에 자멸하는 민주당계 정당 사이에서 바람직한 선택을 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5000만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을 좀 더 나은 사람이 아닌 덜 별로인 사람을 뽑아야 하다뇨.

 

분명 이런 상황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뀔 것이라고 확신은 하지만, 당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 혐오를 심어주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이제 글을 맺고자 합니다. 양당제와 양당에 대해 조금이나마 유익한 정보를 얻어가시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소중한 시간 내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는 우리나라의 양당제 구도와 보수정당의 역사에 대한 포스팅이니, 필요하시다면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양당제 1편]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역사, 계보, 전신, 기원 & 양당제 뜻, 양당제 사례

「SAVAGE_사. 배. 지_사례로 배우는 지식」 안녕하세요. 시구입니다. 오늘은 양당제에 대해 알아볼 텐데요. 우선 양당제의 뜻과 현재 우리나라의 양당제 구도를 먼저 살펴본 뒤, 내용을 이어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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