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행착오/appassionato_열정적인삶

[일론 머스크] 또 사고 쳤다?! 생각 만으로 마우스 조작 가능케 하다!!/ 일론 머스크의 생애, 업적 총 정리 요약

by 시구몽 2024. 2. 25.
반응형

안녕하세요. 시구입니다.

 

21세기 최고 화제의 인물 중 한 명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일론 머스크가 또다시 획기적인 기술을 선보였는데요. 이와 관련된 소식 자세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 뉴럴링크 임상 성공 & 일론 머스크 생애, 업적]

I. 뉴럴링크 첫 임상 소식 들려오다

뇌에
컴퓨터 칩 이식 환자,
부작용 없이
완전히 회복한 것으로
전해져...

뉴럴링크 로고


뇌신경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 설립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한 환자가 생각만으로 컴퓨터 스크린에서 마우스를 조작할 수 있게 됐다"라고 밝혔습니다.

* 뉴럴링크: 인공지능의 잠재 위험성에 대비하여 인류의 위험성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여 높은 지능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회사

 

현지시간으로 2024년 2월 20일, 로이터 통신과 미 경제매체 CNBC 등에 따르면 머스크는 전날 밤 소셜미디어 엑스(X, 옛 트위터)의 음성 대화 스페이스 행사에서 뉴럴링크 임상 시험에 관해 "진행이 좋고, 환자는 우리가 인지하는 부작용 없이 완전히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우스를 제어하고 스크린에서 마우스를 움직일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반응형


이어서 그는 뉴럴링크가 환자에게서 "생각만으로 가능한 한 많은 버튼 누르기"(as many button presses as possible)를 이뤄내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마우스를 위아래로 움직여 스크린 위의 상자를 드래그하는 것 등이 포함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뉴럴링크는 이에 대한 공식 확인 요청에는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1월 28일, 머스크는 뉴럴링크의 첫 임상 시험 환자가 뇌에 칩을 이식받았다고 이식 다음 날 밝힌 바 있는데요. 당시 그는 뉴럴링크의 첫 제품 이름이 텔레파시(Telepathy)이며, 이 칩을 이식받은 환자는 "생각하는 것만으로 휴대전화나 컴퓨터는 물론 그것들을 통하는 거의 모든 기기"를 제어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뉴럴링크는 신체 손상을 입어 팔다리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 각종 기기를 제어할 수 있도록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장치를 뇌에 이식하는 기술을 개발해 왔습니다. 이 회사는 지난해 5월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임상 승인을 받은 뒤 9월부터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루게릭병) 등을 앓는 사지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 참가자를 모집했습니다.

다만, CNBC는 의료 기기 회사가 제품 상용화를 위해 FDA의 최종 승인을 받으려면 여러 차례의 강도 높은 안전성 데이터 확보와 테스트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II. 일론 머스크란 누구인가?

일론 머스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미국 기업인입니다.

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캐나다, 미국 삼중국적이며, 테슬라, 스페이스X, X(구 트위터)를 필두로 다수의 기술 기업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혁신의 대명사로 호평받는 동시에 여러 기행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비판받으면서 매 순간의 언행과 결단에 대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자랐길래 최고 부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참 궁금해지는데요. 이제 아래에서 그의 생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유년기

일론 머스크는 197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엔지니어인 부친 에롤 머스크와 모델 겸 영양사인 모친 메이 머스크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아버지인 에롤이 남아공에서 최연소로 기술사 자격을 취득한 우수한 전기 기술자여서, 어린 시절 머스크의 집은 상당히 부유했다고 합니다. 에롤은 젊은 시절 에메랄드 광산 채굴권을 헐값에 구입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디펜던트 지에 의하면 에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 당시 우리는 매우 부유했습니다. 돈이 너무 많아서 금고의 문을 닫을 수도 없었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적인 부분과는 별개로 머스크는 에롤과의 사이가 매우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머스크의 부모는 그가 10대일 때 이혼했는데, 어머니와 산지 2년 만에 아버지와 같이 살겠다고 했던 것을 훗날 매우 후회했습니다. 평전의 인터뷰에서 그는 아버지에 대한 인터뷰를 아예 거부했습니다.


컴퓨터에 흥미를 가졌던 머스크는 10살 때 그의 첫 컴퓨터를 사게 됩니다.


청소년기

남아공에서의 학창 시절, 그는 몸이 허약한 데다 내성적이며 직설적인 성격, 독특한 성씨 때문에 학우들로부터 따돌림과 폭행까지 종종 당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이혼에다 같이 살던 부친과의 불화로 인하여 머스크는 우울함을 겪은 후 하루종일 책을 읽으며 공상에 자주 잠기기도 했습니다. 모친 메이 머스크에 의하면, 운동에 그다지 소질이 없었고 또래에게 인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한편, 일론 머스크는 프로그래밍에도 흥미를 가졌습니다. 만 12세 일 때 기초적인 프로그래밍을 독학해 'Blastar'라는 이름의 슈팅 게임을 동생과 함께 만들고, 이를 게임 잡지에 500달러(현재 가치로 1,200달러)에 판매했습니다. 1984년, 이로 인해 167줄의 소스코드가 <PC와 사무 기술>이라는 출판물에 실리게 되며, 그의 이름이 대중 앞에 처음 공개된다. 이후 같은 잡지사에 두 개의 게임 코드도 팔았다고 합니다.

또한 엔지니어였던 부친이 기술을 전수해 준 덕에 모형 로켓을 만드는 데도 취미가 있어 가솔린과 각종 화학 약품을 혼합하여 로켓 연료를 만들곤 그걸 자작 로켓에 넣어 발사하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모친은 그가 어린 시절에 했던 활동들이 너무 다양해서 하나를 콕 짚어 말하기가 힘들다고 언급했습니다. 그중에는 이웃에 부활절 달걀 팔기, 오토바이, 공기총 놀이, 비디오 게임방 사업 등이 있다고 합니다.

다만, 학교 시스템에 회의를 느꼈고 물리학, 수학, 컴퓨터과학 등 특정 과목만을 편애했기 때문에 전반적인 학업 성적이 우수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종교와 언어 수업을 매우 싫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캐나다로의 이민

10대 초반부터 부친에게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고 계속 졸랐으며, 이후 청소년 시기를 거쳐 냉전이 끝난 90년대는 세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확신해서 미국에서 유학하고 정착하는 걸 목표로 삼습니다. 그런데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징병제를 시행 중이었고, 남아공 국적자였던 머스크도 입영 대상자였습니다. 머스크는 인종갈등이 만연한 남아공 사회에 경멸감을 느꼈기 때문에 군 복무를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17세가 됐을 때, 캐나다 법이 개정된 덕분에 미국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머스크는 입대를 미루고 캐나다 이민 성공을 위해서 서류상 강점을 갖기 위해 남아공에서 프리토리아 대학교를 다니며 1년간 새로운 법에 따른 절차를 준비했고 캐나다 당국으로부터 입국을 허가받습니다.

 

그러나 1989년 6월에 캐나다로 떠난 17세의 머스크는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됩니다. 머스크가 에롤과 멀어지고 난 후, 어머니인 메이 쪽은 머스크에게 돈을 대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몬트리올에 있던 친척들은 머스크가 오기도 전에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이민 가버린 상황이었습니다. 때문에 1년가량 캐나다 전역을 방랑자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인력시장의 궂은일을 하며 살게 됩니다.

머스크가 1년 동안 캐나다 전역을 도는 동안, 메이를 비롯하여 동생 둘도 캐나다 이민에 성공하면서 토론토에서 가족이 재회하게 됩니다. 가족이 모인 덕분에 온타리오에 위치한 퀸스 대학교(캐나다)에 진학합니다. 이때부터 머스크의 사회성이 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미국으로의 이민

1993년 여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미국)로 편입하는 데 성공합니다. 입학 후 모교 내에서 무면허로 주류를 밀매하는 클럽하우스 사업을 했다고 합니다. 이 와중에 1994년 여름, 실리콘밸리에 건너가서 낮에는 피더클 연구소에서 슈퍼축전기 연구를, 야간인턴으로는 로켓 사이언스라는 게임 제작사에서 잠깐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 회사가 만든 Loadstar와 Rocket Jockey 등의 게임 크레디트에 실제로 머스크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비디오 게임 사업을 잠시 고려했지만, 인류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하기 위해서 대학에서는 경제학과 물리학을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졸업 직전인 1994년 12월에는 태양열 발전을 주제로 첫 번째 논문을 작성했으며 그 외에도 슈퍼축전기와 데이터베이스, 로켓을 연구하고 관련 논문을 집필했습니다. 그리고 본전공을 이어 고체물리학 슈퍼축전기 분야로 1995년에 스탠퍼드 대학교 재료공학 박사과정에 합격합니다.

 

하지만 야후와 넷스케이프 등을 통해 발전해 가는 포털과 웹 브라우저 등 인터넷 산업의 풍부한 잠재성에 매료되어 창업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정합니다. 이후, 실리콘밸리로 이주하여 스탠퍼드 대학교에 입학도 채 하기 전에 합격 통지만 받고 휴학을 신청했는데, 이후 등록을 하지 않아 자동 제적됩니다.

그는 창업하기 전에 본인에게 얼마 정도가 필요한지 알아보기 위한 일종의 실험을 했습니다. 이른바 '일론 머스크의 욕구 실험'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하루를 1달러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창업을 앞두고 혹시나 실패했을 때 뒤따를 가난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 하게 된 실험이었습니다. 머스크는 냉동 핫도그와 오렌지 30달러어치를 사서 컴퓨터를 끼고 한 달 동안 매일 그것들만 먹고 생활을 했습니다. 돈이 없는 삶이 어떠한지를 직접 체험해 본 것인데, 한 달을 지내보니 살만했다고 합니다. 실험 결과, '망해도 한 달에 30달러는 벌겠지'라고 생각한 그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 이후 곧바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게 됩니다.


창업 및 경영

일론 머스크가 경영하고 있는 기업들 로고

일론 머스크가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 2020년대 이후로만 접근하면, 그저 돈 많고 순탄하게 살아온 괴짜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 또한 커리어 내내 승승장구하기는커녕 크고 작은 여려 문제들을 직면해 왔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업에서는 경영권 다툼에 밀려 배제당했으며, 2000년대 후반에는 테슬라 로드스터의 배터리와 변속기에서 문제가 발생해 변속기를 처음부터 재설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생산에 차질을 빚어 정식 출시일을 지키지 못하고 고객과 언론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스페이스X의 팰컨 1 발사체 1~3차 시기가 전부 실패하면서 막대한 재정난을 겪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겹쳐서 자금 조달이 매우 어려워 테슬라와 스페이스X 모두 파산 위기에 몰린 바 있고, 개인적으로도 이혼 소송을 진행하며 힘든 시기를 겪은 바 있습니다. 2008년 중순, 스페이스X 팰컨1 4차 발사가 성공하면서 NASA와의 대규모 화물 계약을 유치하고 테슬라 로드스터를 성공적으로 출시했으며, 2012년 상반기에는 CRS-1과 테슬라 모델 S의 출시 성공으로 유토피아를 꿈꾸는 괴짜 이상주의자 수준을 벗어나 비로소 실리콘밸리의 냉소주의자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이후에도 2016년, 여러 차례 팰컨 9 발사와 부스터 회수에 여러 차례 실패하면서 안정성을 의심받은 바 있고 테슬라는 배터리 등의 문제로 양산 차질을 겪으며 악화된 재정 탓에 오랜 기간 공매도로 고생했지만, 각각 팰컨 9 블록 5에 이르러서는 발사 외 회수 모두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궤도에 올라섰으며 테슬라는 모델 3을 통해 성공적으로 전기차 양산에 성공하면서 2020년대에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III. 일론 머스크의 업적

Zip2

머스크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발전을 하고 있던 인터넷 사업의 가능성을 보고 곧바로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퀸스 대학에서 역시 경영학을 전공하던 그의 동생을 실리콘밸리로 불러들여 팔로알토에 56제곱미터 규모의 꼬질꼬질한 곳에 사무실을 내고 첫 회사인 Zip2를 설립합니다.

인터넷의 수요는 폭증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인터넷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였고, 기업들조차 웹사이트를 제대로 구축할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인터넷에 무지한 사업체들이 처음 온라인에 진출하는 과정을 지원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회사입니다.

 

하지만 SW 개발을 담당하던 머스크는 창업이 처음이다 보니 경영권을 뺏기게 되고, 얼마 안 가 머스크 형제 모두 이사회 의장 자리를 박탈당하고 아웃사이더로 몰리게 됩니다.

1999년 2월, Zip2는 Compaq에 3억 700만 달러로 인수됩니다. 그중 당시 머스크의 지분은 7%로, 2,200만 달러를 받고 엑싯합니다. 하지만 그는 28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백만장자가 됩니다.

* 엑싯: 투자자들이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거나 창업자들이 구주 매각을 통해 보유 주식을 현금화하는 것


페이팔

머스크는 Zip2를 창업하기 전부터 인터넷 은행이라는 아이디어를 실현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다만, 당시에는 개인정보 침해 우려 때문에 인터넷에 카드번호 등 금융 정보를 올리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기에 훗날을 도모한 것입니다.

 

Compaq에 Zip2를 넘긴 1999년 3월, 막대한 현금을 얻게 되자 167 제곱미터의 아파트를 개조하고, 본인의 사재 1,200만 달러를 전부 털어 X.com 설립에 투자하며 연쇄 창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Zip2에서 쫓겨난 교훈을 되새기며,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외부 투자를 받지 않고 직접 사재를 털어 넣어 최대 주주가 된 것입니다.

2000년, 세계최초 온라인 은행으로 핀테크 업계의 시조새와 같은 X.com은 비슷한 서비스를 개발 중이던 컨피니티(Confinity)라는 회사와 합병하고 회사명을 페이팔(PayPal)로 변경합니다. 이 두 회사는 서로 같은 건물에 있는 경쟁 관계였는데, 서로 돈을 부으며 치킨게임을 지속했으나 계속 경쟁만 하다가는 모두 망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에 두 회사가 모두 동의하면서 전략적 합병을 진행한 것입니다.

합병 직후 직불 100만 고객 유치에 성공했음에도 적자는 쌓여만 갔고, 취약한 보안과 비즈니스 모델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서비스 개발 방식을 두고 의견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결국은 머스크가 호주로 휴가를 간 사이 동료들이 이사회에 해임안을 올리는 바람에 실권을 빼앗기고 이사회 투표대결에서 패배하며 CEO 직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이후, 고문직으로 얌전히 물러나 있다가, 2002년에 이베이가 나스닥에 이제 막 상장한 페이팔을 15억 달러에 인수할 때 2.5억 달러를 받고 엑싯하게 됩니다.


스페이스X

페이팔로 인터넷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이후, 머스크는 학부시절부터 관심 있던 분야인 에너지 사업과 전기 자동차 사업, 우주 산업 등의 중공업으로 눈을 돌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우주는 머스크가 평생 동안 꿈꿔왔던 분야였으며, 우주에 대한 그의 갈망은 성인이 되어서도 식지 않았습니다.

앞선 창업을 통해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투자자들의 압박과 연이은 쿠데타로 인해 실리콘밸리에서 피로를 느낀 머스크는 2001년 여름, 로스앤젤레스로 분위기를 환기할 겸 전략적 이주를 선택한다.

 

여기서 머스크는 설치류를 우주에 보낸 뒤 이를 중계하겠다는 아이디어부터 시작해, 화성 오아시스라는 이름의 미니 온실을 나사를 통해 화성으로 보내 식물들의 성장을 공개 방송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우주로 돌리고, NASA의 예산을 증액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발상을 하게 됩니다. 추진체를 구하기 위해서 기술자들을 끌어 모으고, 러시아와 협상하러 2001년 하반기부터 2002년 상반기까지 수 차례 모스크바로 향했으나 협상이 틀어지며 빈손으로 돌아옵니다.

러시아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는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그냥 직접 경량화된 소형 로켓을 직접 만들어서 쏘는 게 더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해 2002년 5월, 페이팔 매각 자금 1.8억 달러 중 1억 달러를 투자하며 우주탐사 비용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스페이스X를 설립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그야말로 쏟아부었고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현재까지도 로켓 설계와 디자인에도 상당 부분 참여하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2003년 내로 다소 비현실적인 플랜 때문에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로켓을 만들어 쏘는 덴 엄청난 기술력과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국가 단위의 자금 지원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며, 따라서 일개 민간 기업에선 로켓 제작을 할 수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던 터라 어찌 보면 세간의 손가락질은 당연했습니다. 실제로 1~3번의 로켓 발사 시도가 모두 실패하는 쓴맛을 본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미국발 대침체가 일어나 추가 투자금 유치마저 힘들어지게 되는 최악의 시기를 맞게 됩니다.

 

머스크는 멘붕에 빠졌지만 이를 극복하고 마지막 기회였던 4번째 발사를 극적으로 성공시켰고, 이후부터는 승승장구를 하게 됩니다. 이는 정부 기관이 아닌 개인 사업가로서 위성 발사를 성공한 최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아래는 이후의 머스크의 우주 사업 진행 과정입니다.

2008년, NASA의 CRS 화물계약 사업자에 선정되어 12회 16억 달러 상당의 펀딩을 받으며 팰컨9과 드래곤1 개발에 착수.

2012년에는 드래곤1으로 민간기업 최초로 ISS 도킹에 성공.

2015년, 한 번 쓰고 버려지던 발사체를 다시 송환시켜서 연료만 충전시키고 재사용하는 아이디어를 팰컨9 Full Thrust로 처음 성공시키면서 CRS 2기로 사업 연장에 이어 보잉과 함께 CCP 사업자로 선정되어 나사로부터 약 33억 달러에 달하는 펀딩을 받아, 드래곤2와 팰컨9 B5 개발에 착수.

2016년 1월, 드디어 처음 생각했던 화성 오아시스의 판을 키워 2025년까지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폭탄선언.

2016년 9월 27일,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 천문 총회에서 화성까지 사람을 보내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안을 발표.

2018년 2월 6일, 발사된 팰컨 헤비의 발사 성공으로 그의 능력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각인시킴.

2020년 5월, 세계 최초의 민간 유인 궤도 우주선인 드래곤 V2의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하는 쾌거도 이루었고, 2019년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로토타입 건조가 시작된 스타십 우주선을 SSTO로 테스트해 보겠다는 계획까지 진행하고 있는 상황.

2021년, 아르테미스 계획에서 스타십 HLS가 29억 달러에 달 착륙 단독 사업자로 선정되어 SLS가 루나 게이트웨이까지 유인 운송을 하면, 스타십 HLS가 루나에서 달로 착륙시키는 과정을 수행할 예정.

2024년, 루나게이트웨이 건설 사업에도 선정되어 팰컨 헤비로 2회 모듈 발사가 예정되어 있음.

아르테미스 건을 포함해 정부와 계약된 것만 봐도 수주 금액이 도합 100억 달러를 상회함.

머스크 재단

2002년 설립된 개인 재단입니다. 주로 과학, 공학적 연구를 진행하는 비영리단체를 후원합니다. 오픈소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OpenAI, 공동 저작 미디어를 개발하는 위키미디어 재단, 모교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생 킴벌의 단체 빅그린, 인류 발전 기술 개발자에게 상금을 수여하는 X 시상식 재단 등이 대표적입니다.

 

2,500만 달러 이상을 후원해 왔으며 향후 본인의 재산 대부분을 이곳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21년 11월에는 기부를 약속한 57억 달러의 대부분을 여기에 지원했으며 누적 기금이 94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다만, 자서전에서는 이는 테슬라 주식 매도로 인해 세금 문제를 맞아 기부한 것이며, 이는 그가 평소 "대다수의 자선 활동이 허튼수작이며 내가 운영하는 지속 가능한 기업에 소득을 재투자하는 게 더 낫다."라고 생각한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합니다.


테슬라

본래 학부에서 연구하던 전기자동차에 관심이 있었던 머스크는 2002년에 사업의 가능성을 엿보았습니다. 이후 2004년 일론 머스크는 최초 투자자로서 635만 달러의 자금을 투자하여 테슬라의 최대 주주로 등극하였습니다.

2006년, AC프로펄전 기술 라이선싱에 로터스 앨리스 새시를 사용한 로드스터를 공개하였으나 애초 계획에 비해 개발 비용이 불어나고, 로드스터의 원가가 판매 가격 이상이라는 것이 밝혀져, 머스크는 2007년에 CEO를 해고하고, 본인이 직접 CEO가 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AC프로펄전을 벗어나 스트라우벨이 설계한 동력계로 테슬라 로드스터를 드디어 출시하였고, 2009년에는 모델 S를 공개했습니다. 하나 로드스터 개발비가 1.4억 달러까지 불어났고, 모델 S 개발비 10억 달러에 더해 대침체로 인해 돈줄이 끊겨 파산 위기에 처했으나, 다임러가 지분 10%를 5,000만 달러에 인수해 주며 생존에 성공합니다.

 

2010년에는 4,200만 달러라는 헐값에 GM과 도요타가 폐쇄한 NUMI 공장을 인수한 뒤 자금을 확보하고 모델 X 개발에 돌입하여 2012년 공개합니다.

 

그리고 2014년 6월 12일, 머스크는 블로그를 통해 테슬라 모터스의 특허를 모두 공개한다고 발표합니다. 이유는 전기차 시장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니치 시장에서 독점 업체가 되는 것보다, 보다 큰 시장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남는 것을 택한 셈입니다.

2018년에는 제너럴 모터스를 시가총액을 추월하며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찍었으나, 헤지펀드들에 의해 가장 인기 좋은 공매도 종목에 등극하며 큰 위기를 맞습니다. 한편, 이 시기 머스크는 주가, 생산량, 매출, 수익성 등의 분야에서 여러 달성 요건을 설정한 뒤, 이사회로부터 3억 3,960만 주 규모의 스톡옵션 패키지를 23.34달러에 발동할 수 있도록 승인받았는데, 다소 무모해 보이는 배팅이었으나 모델 3 양산을 통해 비로소 대부분의 요건을 충족시키며 2021년 1월에 처음으로 세계 최고 부자에 등극합니다.

* 2021년 1월 도요타를 추월해 시가 총액 1위 자동차 제조업체에 올라 있음. 최대 주주인 머스크도 이때 세계 최대 부자 반열에 오른 것.

 

여담으로 그의 비범한 성격 때문인지 기존 자동차 회사의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독특한 차량을 내세웁니다. 자동차 모델 이니셜을 모으면 SEXY가 된다거나, 무리수에 가깝지만 한눈에 봐도 미끈한 차량 디자인을 내놓는 등의 예가 있습니다.


솔라시티

26억 달러에 인수한 이후, 테슬라 에너지 사업부에 편입시켰습니다. 같은 사업부의 에너지 저장 사업이 승승장구하는 반면, 2020년대에도 사업 부진에 시달리며 아직까진 실패한 인수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OpenAI

2015년 10월, 인공지능의 잠재 위험성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고 구글 등 현재 주요 업체들이 이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비영리로 공동 설립한 인공지능 기업입니다. 특허와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함으로써 독점을 방지하여 인공지능의 안전한 발전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설립 3년 만인 2018년에 이사회에서 사임하였고, 2019년에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지분 전량을 매각하여 현재는 아무 관련이 없는 상태입니다.


보링 컴퍼니

머스크는 보링 컴퍼니 설립에 앞서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사업을 보고 효율성과 비용에 실망하여 하이퍼루프라는 아이디어를 고안한 바 있습니다. 태양광 기반으로 1,600km 이하의 거리가 대상입니다. 튜브 속을 저압으로 유지하며 전자기 펄스와 모터로 추진한다고 합니다.

보링 컴퍼니는 미국 도시의 심각한 교통체증 해결을 위해 3D 방식의 자율주행 터널링 지하차도를 짓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로스앤젤레스 터널에서는 하이퍼루프를 여전히 연구개발하고 있으며 라스베이거스에서 LVCC를 중심으로 하는 노선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차량교통의 철도교통화를 폐기하고 오토파일럿 기능이 있는 테슬라 차량만을 대상으로 범위를 제한하면서 본래 취지가 크게 후퇴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굴착 비용, 굴착 허가, 자율주행의 개발 등의 한계에 부딪혀 여타 업체 대비 저렴한 건설비 외에는 별다른 특장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X corp.

머스크는 이전부터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 표현의 자유가 상실됐다며 불만을 많이 드러낸 바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새로운 소셜 미디어를 창업할지 고민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2022년 트위터에 투표를 올린 뒤 찬성표가 과반수를 넘자 테슬라 지분을 매도한 뒤 100억 달러라는 거금으로 트위터 인수를 시도하고 이를 성공시킵니다. 인수 협상 과정에서 검열 최소화, 암호화폐 스팸봇 퇴치, 콘텐츠 편집기능 추가, 추천 알고리즘 & 내부문건 공개 등 정책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인수 당시 트위터를 440억 달러(약 58조 6천640억 원)에 인수한 지난해 10월 스페이스X로부터 10억 달러를 빌렸으며 한 달 뒤에 곧바로 이자와 함께 상환했다고 밝혔습니다.


xAI

xAI는 미국의 인공지능 개발 기업입니다.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X를 통해 제공하며, AGI 개발을 통한 우주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머스크가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긴 하지만 X Corp., 테슬라 등 그가 책임자로 있는 기업과는 엄연히 구분되는 법인입니다. 하지만 데이터 공유 등을 통해 긴밀한 협력을 이어 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글을 마치며

일론 머스크에 대해서는 그저 뉴스를 통해 가끔 전해지는 소식을 들으며 전기차나 우주선을 만드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본인의 꿈을 위해 끝없이 정진하여 결국 하나씩 이뤄낸 대단한 사람이었는데요. 그에 대해 조사를 거듭할수록 경외감 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그가 이룬 업적 외에 사생활적인 측면에서는 논란도 있긴 하지만요.

 

이상으로 오늘 포스팅은 여기서 맺고자 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으로 가 무엇을 해낼지 참으로 기대가 되네요. 소중한 시간 내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