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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appassionato_열정적인삶

[알렉세이 나발니 ①부] 푸틴의 정적 나발니의 생애, 사망 의혹 총 정리

by 시구몽 202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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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구입니다.

 

2022년 2월,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고 갔던 이 전쟁은 2년이 지난 2024년 2월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데요. 과거에도 전쟁을 본인의 지지율 상승을 위한 도구로 이용한 적이 있던 미친 푸틴에게 감히 한평생을 대항하다 최근 사망한 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알렉세이 나발니'라는 인물인데요. 그의 죽음의 원인이 자연사가 아닌 타살이라는 강한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알렉세이 나발니라는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알렉세이 나발니


[알렉세이 나발니: 반푸틴 세력의 상징, 부틴의 정적]


개요

러시아의 변호사, 정치인. 러시아 내 반푸틴 세력을 상징하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블라디미르 푸틴의 독재와 부정, 침략전쟁을 비판했으며, 이로 인해 숱한 정치적 탄압은 물론 러시아 정부 관계자로 추정되는 세력으로부터 암살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체포된 뒤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하르프의 제3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24년 2월 16일 옥중에서 의문사하게 됩니다.


알렉세이 나발니 프로필

  • 본명: 알렉세이 아나톨리예비치 나발니
  • 출생: 1976년 6월 4일,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주 오딘초보구 부틴
  • 사망: 2024년 2월 16일 (향년 47세), 러시아 연방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하르프 제3교도소
  • 국적: 러시아
  • 직업: 정치인, 변호사, 인터넷 방송인
  • 신체: 190cm, 80kg
  • 부모: 아버지 아나톨리 이바노비치 나발니, 어머니 류드밀라 이바노브나 나발나야
  • 형제: 남동생 올레크 나발니
  • 배우자: 율리야 나발나야
  • 자녀: 장녀 다리야 나발나야, 장남 자하르 나발니

나발니의 가족사진


알렉세이 나발니의 생애

1976년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알렉세이 나발니가 태어납니다. 러시아 민족 우호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예일 대학교에서 유학하여 영어도 러시아어 억양이 강하기는 하나 유창하게 구사했습니다. 그의 자식들 또한 유학 생활을 한 터라 영어를 잘한다고 합니다. '미래의 러시아(Россия будущего)'라는 정당을 이끌었으며 완전히 독재화된 러시아 정치판에서 명망 있는 정치인들 중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과 그의 통합 러시아에 맞서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힙니다. 그가 내세운 이념으로는 참여민주주의와 친유럽주의, 자유주의가 있습니다.

생전 지속적인 탄압으로 대다수의 정적이 축출, 제거된 러시아에서 얼마 남지 않은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의 유력한 정적이었고, 푸틴도 대놓고 그를 비국민으로 취급하며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일반적인 반대파들과는 아예 다르게 대응하였습니다. 선관위에 의해서 출마가 막히다 보니 주류 야권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정계 주류에 진입하지 못하였지만, 언제까지나 푸틴이 적극적으로 탄압해서 정계에 못 가는 것뿐이었고, 실제 정치력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야당 주자로 모스크바의 선거 판세를 움직일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반푸틴 재야 정치인들과는 격이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암살당한 보리스 넴초프와는 격이 전혀 다를 정도로 영향력이 센 인물이기에 푸틴으로서는 더욱 경계와 제거의 대상이었습니다.

* 보리스 넴초프는 1990년대만 해도 주지사와 부총리를 지낼 정도로 정계 주류에 속했던 인물이었지만, 푸틴과 사이가 벌어진 이후로 통합 러시아에 합류하지 않고 따로 정당들을 차렸는데, 전부 하나같이 군소정당에 머물렀고, 그 결과 정계 주류에서 밀려나 그저 반푸틴 인사 중 하나로 여겨졌을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습니다. 그러나 푸틴은 보리스 넴초프에 대해서 계속해서 신경 썼고, 넴초프도 반푸틴 활동을 한 터라 죽음으로까지 몰리게 된 것입니다.


반부패 조사 활동

2008년, 알렉세이 나발니는 5개의 가스 회사 주식을 30만 루블 어치 사들였고, 이를 통해 해당 주식회사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행동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회사들이 소유한 금융 재산의 투명성을 노렸습니다. 이것은 법적으로 이미 요구되는 사항이었지만, 해당 회사들의 상위 직원들은 횡령과 회사 투명성을 차단하는 행위에 연루되었다는 혐의가 있었습니다.

2010년 11월, 트랜스네프트 가스 회사의 비밀 회계 감사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그의 블로그에 따르면, 회사의 주요 경영자들은 동부 시베리아에서 진행되던 태평양 석유 파이프라인 공사 도중, 무려 40억 달러를 빼돌렸다고 합니다.

2010년 12월, 러시아 연방정부의 행정 조달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패행위를 낮추기 위한 로스필 프로젝트를 선언했습니다. 프로젝트는 행정상 필요한 물자 조달 등을 모든 러시아 연방 정부가 온라인에 게시 및 공고하여 입찰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낙찰 정보 또한 온라인에 반드시 게시되도록 했습니다.

2011년, 로스야마 프로젝트를 개시하여 지역 정치 운동을 지원하고, 시민 참여를 유도하였습니다.


정치 활동

알렉세이 나발니는 특히 청년층에게 폭넓은 지지를 얻었는데, 블로그를 통해 대중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으로 지지자들을 늘려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를 사용하여 푸틴을 공격했으며, 정치 시위를 조직했습니다. 또한 푸틴과 그의 부적절한 행동을 고발하는 문서를 올렸으며, 선거 운동을 홍보하기 위해 블로그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던 2011년 2월, 라디오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통합 러시아를 '사기꾼과 도둑놈들의 정당'이라고 부르는 패기를 보여줍니다. 이로 인해 '사기꾼과 도둑놈들'이라는 말은 인기를 얻어 통합 러시아(러시아의 정당명)의 별명이 된다. 그렇게 점차 인지도와 세를 불리다가 2011년 러시아 총선 사태에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민주화에 대한 연설을 하는 것으로 그 존재감을 확실히 대중에 각인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는 푸틴 정권이 그를 본격적으로 예의주시하고 경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듬해인 2013년 지방선거에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지만 27%의 득표율을 얻으며 낙선하게 됩니다. 다만 득표율 자체는 부정 선거의 여부와 정당 기반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선전한 편이었고, 주요 선거전문가들이 소뱌닌이 60% 이상을 득표해서 안정적인 재선을 거둘 것이라는 예상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실제 선거에서는 51%를 득표함) 조금만 더 선전했어도 모스크바 시장 선거를 결선으로 끌고 갔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습니다. 여론조사에서도 6월에는 소뱌닌 77%대 나발니 11%로 나발니가 현저하게 밀리고 있었는데, 불과 3개월 만인 9월 선거에서는 격차를 51%대 27%로 줄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신진 정치인사로 주목받으면서 출마에 방해를 받았고,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와 러시아 경제 위기까지 여러 커다란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졌던 2012년~2015년 동안은 눈에 띄는 활동이 없었습니다. 사실 해당 기간 동안은 푸틴의 지지율이 한창 80%대를 찍었을 정도로 고공행진하던 시기로서 상대적으로 눈에 띌 일이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16년에 인터넷을 통해 다시 한번 러시아 정권 우두머리들의 부패, 특히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부패 혐의를 폭로했습니다.

 

2017년 3월에는 대규모 반부패 시위를 주도하여 러시아 민주주의 불씨를 살려나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8년에는 지신이 이끌던 진보당을 해산하고 미래의 러시아라는 당을 창당했다.

2019년 지방선거에서 모스크바 의회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지만, 선관위에 막혀 출마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대신 타 야당을 찍어달라고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당부했습니다. 그 결과 모스크바 의회 선거에서 러시아 연방 공산당, 공정 러시아, 야블로코당 등 타 좌파 성향 야당이 약진한 동시에 통합 러시아의 의석수가 크게 줄어 통합 러시아는 사실상 패배를 당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푸틴을 견제할 정도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며, 그 이전과는 격이 전혀 다른 인물이 되었습니다. 당시 친 푸틴 성향이었던 극우 야당 러시아 자유민주당은 한 석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사무실을 급습한 경찰에게 끌려나온 나발니

2019년 12월 25일에 알렉세이 나발니의 측근이 재징집당해 러시아 북극 기지에 보내졌다고 보도되자 야권인사들은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26일에는 나발니의 사무실이 경찰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했으며, 29일에 러시아 법원에서 나발니에게 푸틴 측근이 운영하는 급식업체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결정했고 나발니는 이에 항소했습니다.

 

아래는 2020년 이후 그의 정치 주요 활동입니다.

2020년 3월, 나발니의 가족과 부모의 계좌가 정부에 의해 강제로 동결.
6월, 무고 혐의로 형사 입건.
7월, 러시아 개헌 국민투표는 사기라고 주장.

2021년, 유럽의회부터 사하로프 인권상을 수상. 나발니는 유럽의회에 감사를 표하며 막중한 책임이라고 밝힘. 이에 러시아 정부는 유럽의회를 비난.

2022년 1월, 러시아 금융당국에 의해 테러리스트 목록에 오른 것이 알려짐.
2월 15일, 러시아 검찰은 나발니에게 기부금 횡령 혐의와 판사 모독 혐의를 추가. 이에 나발니는 재판에 출석하여 모든 것이 러시아 정부의 위협이라고 비판하며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힘. 동시에 나발니의 딸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프랑스로 가서 유럽 연합에서 수여한 사하로프 인권상을 받았으며,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위해 유럽 국가들이 신경 써달라고 밝힘.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푸틴이 자신의 부패를 숨기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며 비난.
3월 22일, 러시아 법원은 나발니에게 제기된 거액 사기와 법정 모욕 혐의 모두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9년 징역형과 함께 120만 루블(약 1,4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 이에 국제 인권 단체들과 서방 국가들은 정치적 판결이라고 비난하며 석방할 것을 촉구.
4월 8일, 애플은 나발니의 선거 앱 서비스를 재개.
4월 14일, 트위터에 서방의 빅테크 회사들에게 러시아 정부의 허위선전에 대적해 달라고 촉구.
7월 11일, 나발니는 옥중에서 '국제 반부패재단'(ACFI)를 창설.
8월 16일, 동료 수감자들에게 노동조합 결성을 권유하다가 러시아 당국이 그에게 가석방 조건 위반과 사기, 법정 모욕의 혐의를 추가시켜 징역 11년 6개월을 선고. 또한 나발니는 자신의 변호사와 지지자들에게 현재 독방에 수감되었고 수감된 독방이 매우 열악하며 친척들의 면회까지 금지시켰다고 밝힘.
9월 21일, 변호인을 통해 공개된 옥중 영상 메시지에서 2022년 러시아 동원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많은 러시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고 비판.
9월 30일, 푸틴이 몰락해도 러시아의 문제는 여전하기에 러시아의 체제를 내각제로 바꾸는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 또한 독립적 사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
10월 21일, 러시아 정부에 의해 테러 조장 혐의로 기소.
11월 27일, 비좁은 독방에 수감되었고, 가족의 면회도 금지당하며, 변호사 면담조차 제한적이고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이야기만 간신히 하는 수준이라는 소식이 전해짐.
12월 21일, 바그너 그룹의 창립자 프리고진이 보안이 엄격한 교도소로 와서 용병을 모집했고, 죄수 80~90명이 지원했다고 밝힘.

2023년 1월 10일, 러시아의 의사 200명이 러시아 정부에 나발니에 대한 학대를 중단할 것이며, 나발니에 대한 종합건강 검진과 치료를 요구.
1월 11일,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가 나발니가 좁은 감옥에서 학대당하며 건강이 나빠졌다고 전함. 또한 율리아는 나발니에게 치료약을 달라고 호소.
8월, 러시아 법원에게서 19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음.
12월, 멜레호보에 있는 IK-6 형무소에서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하르프 IK-3 형무소로 이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짐.

재판을 받고 있는 나발의 모습


독살 미수 사태

2020년 8월 20일, 알렉세이 나발니는 공항 카페에서 차를 마신 뒤 기내에서 건강이상을 호소해 비상착륙까지 한 뒤 의식불명 상태로 산소호흡기를 단 채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제2의 방사능 홍차 사태가 의심되는 사건이었습니다.

* 푸틴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활발하게 반푸틴 활동을 하였던 과거 러시아 FSB(연방보안국) 요원이었던 알렉산드르 발테로비치가 폴로늄이라는 방사능 물질이 든 녹차를 마시고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황상 푸틴이 사주한 암살이라는 것이 유력한 가설입니다.

당시 나발니가 입원 중이던 러시아 옴스크 구급 병원

독일 인권 시민단체가 치료해 주겠다고 나서 전용기까지 보냈지만 러시아 의료진은 환자에게 시기상조라며 반대합니다. 의료진은 검사에서 나온 독극물이 없다고 밝혔지만, 나발니의 측근은 경찰이 나발니에게서 '치명적 물질'이 검출되었다고 자신에게 말했다며 이를 부인했습니다.


8월 21일, 의료진은 독일로 이송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나발니는 결국 전용기를 타고 독일로 가서 치료받게 되었습니다. 5시간 만에 독일에 도착하였으며 상태는 안정적으로 알려졌으나, 완치해도 몇 달간 정치활동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게 됩니다.

8월 24일, 독일 정부는 알렉세이 나발니가 독극물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을 표했습니다. 같은 날, 나발니가 치료를 받은 샤리테 병원에서는 그가 심각하되 당장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니지만, 향후 후유증에 대한 우려를 배제할 수 없음을 발표했습니다. 러시아는 이를 반발하는 성명만 내었으며, 서방권에선 러시아에게 진상을 밝히라고 촉구했습니다. 이후 러시아 경찰은 사전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8월 31일과 9월 1일, 나발니의 유튜브 채널에 동영상이 새로 올라옵니다. 중독의 계기가 된 시베리아 조사 당시 녹화한 것으로, 노보시비르스크와 톰스크의 부패를 다룬 것입니다.

9월 2일, 독일 연방군 연구소가 나발니에게 신경작용제인 노비촉이 사용된 "명백한 증거"가 발견됐다고 밝힙니다. 이에 러시아 측은 반박했습니다.

그리고 9월 7일, 나발니가 의식이 있는 상태였음이 밝혀집니다.


푸틴 정부의 탄압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의 부정부패와 권위주의에 지친 러시아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푸틴의 정적으로서 가장 큰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러시아 민주화 세력의 핵심 인사 중 하나이며, 푸틴과 권위주의 세력이 붕괴할 경우, 러시아를 이끌 차기 지도자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 나발니는 사망하기 5개월 전,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서 "한국과 대만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할 수 있었다면 러시아도 가능할 것이다"라고 한국의 민주화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푸틴 정부의 정적이 되면서 러시아 정부에게서 탄압을 받게 됩니다. 수감 생활 중에는 질병에 걸려도 약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가 하면, 가로 2m, 세로 3m의 방에 갇혀 생활하였으며, 하루에 16시간 동안 강제로 철제의자에 앉아 있도록 하고, 이에 심각한 허리 통증에 시달려 의사를 요청해도 단 5분만 진료를 하고 가버렸고, 나발니에게 설명 없이 정체불명의 약을 주사하기도 했습니다.

나발니 변호사들 또한 체포되거나 압수수색을 당했으며, 나발니의 변호인들은 러시아 테러리스트 및 극단주의자로 지정되었습니다. 나발니의 정치 사무소를 이끌던 크세니야 파데예바는 '극단주의 조직'을 운영한 혐의로 징역 9년 6개월 형을 선고받습니다.


사망

2024년 2월 16일, 알렉세이 나발니는 교도소에서 향년 47세로 옥사합니다. 러시아 연방교정청은 산책 중 의식을 잃고 숨졌다고 밝혔으며 정확한 사인은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나발가 복역 중이던 교도소

2024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1달 앞둔 시점에 옥사했기에, 그의 죽음을 미심쩍게 보는 의혹의 시선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반체제 진영 등에서는 나발니의 죽음은 푸틴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에이피 통신 등이 전했습니다. 또한 미국은 푸틴 정권에 책임이 있다며 규탄하였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푸틴 정권을 비난하고 규탄했습니다.

레오니트 솔로비요프 변호사
"이틀 전(14일) 나발니를 면회했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괜찮았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
"나발니의 죽음은 살인, 교도소 환경이 나발니의 죽음을 초래한 것으로 생각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나발니의 죽음에 격분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푸틴이 나발니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나발니의 어머니 류드밀라 이바노브나 나발나야
"지난 12일 교도소를 방문했을 때 아들이 건강하고 활기 있었다"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
"러시아 정권과 푸틴은 그들의 잔혹한 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물론 러시아 정부는 책임을 부인했습니다.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마리야 자하로바
"법의학적 자료가 없는 상태인데도 서방은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러시아 상원의 국제문제위원회 부의장 블라디미르 자바로프
"러시아는 어떤 식으로든 나발니의 건강을 해칠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
"사망 원인에 관한 정보는 아직 없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나발니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성명이 나오고 있다. 분명히 이것은 완전히 광기다. 우리는 그러한 성명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용납할 수 없다"

러시아 외무부는 텔레그램 성명
"무차별적인 비난 대신 자제력을 보이면서 의학적 검사의 공식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

죽음에 관한 의혹

알렉세이가 사망한 날, 나발니의 측근들은 그의 사망에 관해 확인된 것이 없다며 상황 파악을 위해 교도소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나발니의 시신이 영안실에 없었다고 밝힙니다. 나발니의 측근들은 "나발니는 살해된 것이며 러시아 당국이 흔적을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신을 넘겨주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나발니의 대변인은 SNS를 통해 "나발니가 살해됐으며 푸틴이 명령을 내렸다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는데, 이런 주장에 대해 크렘린궁은 "용납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밝힙니다.

 

나발니가 사망했다고 발표되기 이틀 전, FSB 당국자들이 해당 교도소를 방문해 일부 보안 카메라와 도청 장치 연결을 끊고 해체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나발니가 사망한 것으로 공식 보고된 시간에서 불과 2분이 지난 시점에 교도소 당국은 미리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발표를 내놨고, 4분 뒤 러시아 측 텔레그램 채널은 나발니의 사인이 혈전이라고 주장했으며, 그 7분 뒤에는 크렘린궁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가 이를 언급했다며 인권단체에서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나발니가 수감됐던 교도소는 그의 시신이 다른 지역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지만, 해당 병원은 시신이 없다고 했으며 나발니의 시신이 한밤중에 교도소에서 기습 반출된 정황이 포착됐다고 했습니다. 교도소에 출동했던 익명의 구급대원은 나발니의 시신에서 멍 자국을 발견했다고 하며 경련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미국의 의사 콘스탄틴 발로노프는 "부검이 늦어질수록 명확한 사인 규명 가능성도 작아지는데 나발니 시신에 대한 부검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은 게 의문이다. 중독 등 다른 외부 원인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시신을 공개하지 않는 건 숨길 게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나발니가 웃으며 농담하는 장면

2월 19일, 나발니가 사망하기 불과 하루 전에도 아픈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으며 농담하는 장면이 공개됩니다. 나발니 측 변호사는 러시아 당국이 "조사가 연장됐다"라고 전했다며, 의도적인 시간 끌기라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EU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 논의에 들어갑니다.

2월 20일, 인권단체 굴라구넷 창립자 블라디미르 오세치킨이 "나발니의 사인이 KGB(구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의 암살수법인 원-펀치 기술과 일치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북극권에서 근무한 교도관 및 복역한 경험이 있던 사람의 증언을 밝혔는데 "나발니가 사망 전 영하 27도까지 떨어지는 야외독방에 2시간 반 이상 가둬졌으며, 이를 통해 혈액순환을 늦춰 그의 몸을 먼저 파괴시켰고, 원-펀치 기술은 KGB 특수부대의 살인 방식으로 심장이나 몸 중앙에 한 번의 정권 지르기로 사람을 죽이도록 훈련했기에 그를 죽이기 매우 쉬웠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나발니가 사망한 교도소에 FSB 장교가 있었고, CCTV까지 끊긴 걸 보면 크렘린궁이 그의 죽음을 명령했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2월 25일 현재, 나발니의 시신은 모친에게 전달이 된 상황이며, 장례 방식은 아직 불분명한 상태라고 합니다.


러시아 정부의 만행

아래는 알렉세이 나발의 사망관 관련해 러시아 정부가 보인 만행들입니다.

나발니의 죽음을 추모하는 일반 시민들에게 "불법 시위에 참가하지 말라"라고 경고했으며, 러시아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은 억측을 자제하라고 요구하거나 아예 나발니의 사망을 언급하지 말 것을 촉구.

나발니를 추모한 사람들이 백여 명가량 체포. 이후 반발 여론을 의식했는지 추모비에 헌화하는 정도의 추모는 허용.

나발니 추모 현장에서 모두 400명 이상이 경찰에 체포된 것으로 밝혀짐. 나발니 추모 현장에서 구금된 사람들은 단기 징역형을 선고받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154명에게 최고 14일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다고 함.

나발니 추모객 남성들에게 입영 통지서를 보내며 입대를 강요.

소셜미디어에서는 임시로 설치된 나발니 추모비가 철거되거나 추모객이 놓은 꽃이 치워졌다는 보도나 영상이 잇달아 게시.

교정당국 간부가 승진한 것으로 알려짐. 반부패재단의 대표 이반 즈다노프는 "그는 나발니의 사망과 관련된 사람"이라며 "그의 승진은 고문에 대한 푸틴의 공개 보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라고 논평. 이에 크렘린궁 대변인은 "정상적인 승진일 뿐"이라며 나발니의 죽음과 이번 승진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주장.

나발니의 어머니 류드밀라 나발나야가 아들이 사망한 지 6일 만에 시신을 확인했으나, 당국으로부터 시신을 비밀리에 매장하라는 압박을 받음.

나발니 측 대변인은 "한 시간 전에 수사관이 나발니의 어머니에게 전화해 최후통첩했다"며 "3시간 이내에 공개 작별 행사 없는 비밀 장례식을 치른다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알렉세이는 그가 숨진 교도소에 묻힐 거라고 했다"라고 밝힘.

글을 마치며

최근 유튜브 쇼츠를 통해 알렉세이 나발란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1분이 채 안 되는 영상에 담긴 그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고, 그에 대한 포스팅을 하자고 생각하고 미뤄두고 있었는데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늘에서야 나발니에 대한 포스팅을 하고자 마음을 먹었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료 조사를 하려고 그의 이름을 검색하였을 때 제일 먼저 접할 수 있었던 소식은 그의 죽음이었습니다. 단 며칠 사이에 말이죠. 우리나라도 이승만, 박정희와 전두환 같은 악질적인 독재자가 나라를 주무르던 때가 있었는데요. 러시아의 푸틴은 그들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현시대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인 것 같습니다.

알렉세이 나발 추모 현장

역사상 민주화의 대가는 언제나 가혹했듯이, 러시아의 민주화도 불가능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험난한 가시밭길을 거쳐야 할 것 같습니다. 부디 무고한 희생자들이 많이 나오지 않길 바라고, 푸틴의 사망을 기원하며, 푸틴에 맞선 대담하고 열정적인 남자였던 알렉세이 나발니의 명복을 빕니다.

 

이상으로 오늘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소중한 시간 내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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