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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SAVAGE 사례로 배우는 지식

['그냥'에 대한 고찰] 그냥 뜻, 그냥 용례, 그냥 사례, 그냥의 역사

by 시구몽 202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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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AGE_사. 배. 지_사례로 배우는 지식

 

안녕. 나는 시구야.

 

오늘은 '그냥'이란 단어에 대해서 알아볼 거야. 그래서 이번 포스팅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반말로 작성을 해볼까 해. 다시는 예의 없이 굴지 않을 테니 한 번만 양해를 해줘.

그냥 올려 본 동네 벚꽃 사진


['그냥'에 대하여]

I. '그냥' 뜻

그냥의 품사는 부사에 해당해. 그럼 그냥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자주 사용하기도 해서,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하게 콕 집어서 정의 내리려니 떠오르지 않지? 그냥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고 해.

1.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2. 그런 모양으로 줄곧.
3.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

 

난 처음 사전을 통해 봤을 때, '어랏! 이런 뜻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요즘은 그냥이라는 말을 정확히 저런 의도로 쓰기보다는 일종의 추임새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거 같아.

 

그럼 다음으로 그냥이 쓰인 예시를 몇 가지 살펴볼게.


II. '그냥'의 용례

그냥은 특별한 생각 없이 무심코 쓰기 쉬워서 남발하기 쉬워. 가령, 기분이 어떻냐, 왜 그랬냐, 무언가를 평가하는 등의 질문에도 그냥이라는 대답을 쓸 수 있지. 이럴 때는 간혹 성의 없다는 인상을 줄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해.

"그냥 불러봤어요"

아무 이유 없이 불러봤다는 뜻이야. 이러고 대화가 끝나면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아무 이유 없이 부를 수 있다는 건 제법 친하다는 뜻이기도 해. 이런 의미가 조금 와닿지 않을 수도 있어서 글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해.

'그냥'이란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후자의 의미로 그냥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중에서


참 아름다운 말이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닌 것'들은 살면서 정말 접하기 쉽지 않은데. 특히 주변에 '정말이지 그냥이 아닌 사람'이 있다면 평소에 소중하게 대해주고 아껴줘야 할 거야.


"그냥 그렇다고"

이 표현의 경우는 뻘쭘했거나 이유가 사실 있긴 한데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을 때 사용해. 인터넷상에서는 TMI를 남발하고 난 뒤 이 표현을 쓰는 경우도 많이 보이곤 해.

"그냥 이긴다"

두 개의 집단 또는 두 사람이 맞붙었는데,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이길 경우, 이런 표현이 쓰여.

"아주 그냥"

그냥은 굉장히 평범하다는 뜻인데, '아주 그냥'이라고 하면 도리어 '아주'의 의미를 강조하는 추임새 같은 역할을 해. 이런 식의 쓰임은 '확 그냥', '막 그냥'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

근래 구어에서는 관형사처럼 명사 앞에서도 쓰이곤 해. 이럴 때에는 '일반, 보통, 디폴트' 정도의 의미를 가지지.'그냥 라면'의 경우, 대파나 치즈를 넣는 등 무엇 하나라도 특수한 라면이 아니라 일반 라면을 의미해.


III. '그냥'의 역사

19세기부터 그냥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해.

올타 그러나 그냥은 쥬지 아니 ᄒᆞᄀᆡᆺ스니 爲先 이 籠 속에 드러가 보라 ᄒᆞ고

심상소학(尋常小學)」중에서

* 심상소학: 1896년에 어린이의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

 

어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일단 사전에서 형태소는 '그-냥'으로 분석하고 있어. '이냥', '저냥'도 있는 것으로 볼 때 지시사 '그'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

 

16세기에 출간된 조선시대의 중국어 학습서인 「번역노걸대」에는 오늘날이라면 그냥을 쓸 자리에 '그저'를 쓰고 있어. '그저'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데, 당시에는 단순히 그냥의 의미로 쓰였다고 해.


IV. '그냥'의 기타 활용 사례

나이키의 옛 슬로건

'just do it'은 그냥 하라는 뜻이다.

1988년부터 2019년까지 나이키의 슬로건으로 쓰인 문구인데, 그로 인해 나이키의 운명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TV 광고에 '저스트 두 잇'이 등장하자, 이는 곧 스포츠 선수들의 열정과 투지를 상징하는 말이 되어 버렸어.

 

여담으로 이 슬로건은 사실 미국에서 사형제를 부활시킨 악명 높은 사형수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 그냥 자신의 사형 직전에 "Let’s do it"이라고 말했어. 얼른 자신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란 의미였지.


김연아와 마이클 펠프스의 '그냥'

위 사진이 마이클 펠프스, 아래 사진은 김연아님.

이 사진은 꽤 유명해서 한 번쯤 봤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둘 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정상을 찍은 인물들인 만큼, 이들이 자신의 본업을 대하는 태도가 화제가 되었었어. 아무리 혹독한 훈련도 복잡한 생각과 핑계를 댈 틈을 주지 않고, 머릿속을 비우고 '그냥' 한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큰 감명을 받았었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그냥'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설 장면 캡쳐.

닥터 스트레인지 역으로 잘 알려진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그냥을 아주 인상 깊게 활용한 바가 있어. 숨도 쉬지 않고 아주 격렬하게 울부짖듯이 말을 쏟아내는데, 결론은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고 실천에 옮기란 것이야.

 

이런 동기 부여가 되는 콘텐츠를 주변 사람들과 가끔 공유를 하는 편인데, 이 영상은 너무 호소력이 넘치는 탓인지 호불호가 갈리더라고. 최근에도 아주 소중한 사람에게 한번 보여줬었는데, 반응은 그리 좋지는 않았어. 그래서 꼭 보라고 추천은 못하겠지만, 혹시나 궁금할까 봐 아래의 접은 글에 연설문 중 일부를 번역과 함께 남길게.

더보기

Learn to say “Fuck You” to the world once in a while. 
가끔은 세상에 '꺼져'라고 할 줄 알아야 해 

​You have every right to. 
넌 그럴 권리가 있어.

Just stop thinking, worrying, looking over your shoulder, wondering, doubting, 
그만 생각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지 말고, 망설이고, 의심하고,

fearing, hurting, hoping for some easy way out, struggling, grasping, 
두려워하고, 상처받지 말고, 쉬운 길만 찾지 말고, 낑낑거리고, 욕심부리지 말고,

confusing, itching, scratching, mumbling, bumbling, grumbling,
혼란스러워하고, 가려워하고, 긁고, 머뭇거리고, 우왕좌왕하고, 투덜거리고,

 

humbling, stumbling, numbling, rambling, gambling, tumbling, 
비약하고, 휘청거리지도 말고, 조작하고, 횡설수설하고, 도박하고, 구르지도 말고,

scumbling, scrambling, hitching, hatching, bitching, moaning, groaning, 
문지르고, 밀쳐내고, 꽉 묶어버리고, 깨버리지도, 욕하고, 신음하고, 끙끙 앓지도,

honing, boning, horse-shitting, hair-splitting, nit-picking, piss-trickling,
불평하지도 말고, 분석하지도, 허튼소리 하지도, 따지지도 말고, 트집 잡고, 찝찝해하고,

nose sticking, ass-gouging, eyeball-poking, finger-pointing, alleyway-sneaking, 
오지랖 떨고, 쓸데없는 짓 말고, 눈 찌르지도, 손가락질 하지도, 훔쳐보지도 말고,

long waiting, small stepping, evil-eyeing, back-scratching, searching,
한참 기다리고, 찔끔찔끔 가고, 째려보고, 아첨하지도 말고, 찾지도,

perching, besmirching, grinding, grinding, grinding away at yourself.
앉아서 쉬지도, 이름에 먹칠하지도 말고, 스스로 갉아먹고, 갉아먹고, 또 갉아먹지 말고.

Stop it and just DO!
다 그만두고 그냥 좀 해!


글을 마치며

나는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인생에서 어떤 일을 할 때,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고수해 왔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도 엄청난 노력도 했었고 말이야.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내게 조언을 구하거나,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실은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던 소중한 이에게 "그만 말하고 그냥 해라, 좀"라고 말했던 적들 있어. 그냥 좀 다정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지금 와서는 그게 감당하지 못할 후회로 남을 것 같아.

형.. 그게 안돼요..

비범인들의 가치관에는 분명히 배울 점들이 많지만, 세상에는 '그냥은 할 수 없는 일'들도 있는 것 같아. 지금 나도 그런 일들 중 하나에 직면해서 분명하게 느끼고 있거든. 절대로 그냥은 못한다는 확신이 들어. 내 스스로에게도 수없이 외쳤고, 남들에게도 무책임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성의 없게 외쳤던 "그냥 해!"라는 말이 막상 나에게 돌아오니까 그건 정말이지 그야말로 비수가 따로 없더라고.

 

오늘은 반말하고, 사적인 얘기까지 한 것도 모자라, 우울한 이야기까지 해버렸네. 정말 가지가지 나뭇가지가 따로 없다. 부디 울적함은 전염되지 않길 바라고, 조금이나마 유익하고, 하나라도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길 바랄게.

 

이제 포스팅을 마칠게. 소중한 시간 내어 내 블로그에 방문해 줘서 정말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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